K-서예, 붓으로 쓴 삶과 예술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과 국립전주박물관(관장 박경도),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이학재)가 공동 주최한 특별전 ‘서예, 일상에서 예술로’가 인천국제공항 인천공항박물관에서 6월 27일(목) 개막했다.(사진 1,2) 한국 전통 서예의 일상성과 예술성을 조명한 이번 전시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서예문화 관련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공항박물관의 협력 아래 소속 국립박물관의 특성화 사업을 소개하는 기획전시의 일환으로, 국립대구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에 이어 3번째 전시다.

특별전시는 크게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삶을 쓰다’에서는 글쓰기의 일상성을 보여준다. 진열장 안을 사랑방 공간으로 연출하여 경상을 비롯해 붓, 먹, 벼루, 연적 등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전시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 쓴 <제일난실第一蘭室 현판>(사진 3)은 스승인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이하응의 서체를 보여줌과 동시에 삶의 공간에 글씨가 항상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죽은 벗의 어린 딸을 어떻게 보살필지 논의하는 <정약용 편지>(1822)에서는 속도감 있는 편지 글씨에 담긴 학자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사진 4)

사진3.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난초를 사랑해 직접 난초를 키우며 그리기도 했다. 현판의 글씨 ‘제일난실第一蘭室’은 난초를 길렀던 사적인 공간을 가리킨다. 글씨는 이하응의 스승인 김정희(1786–1856)의 예서와 비슷하다. 현판 좌우에 새긴 난초와 대나무는 글씨의 획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문인의 우아한 품격을 잘 드러낸다.
사진4.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서학西學으로 인해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정약용은 윤규로(1769-1836)에게 편지를 써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벗을 슬퍼하며 그의 어린 딸을 데려오는 것을 상의했다. 행서로 빠르게 쓴 글씨에서 먹의 농담과 획의 강약을 살펴볼 수 있다. 편지를 받은 윤규로는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머물렀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의 주인인 윤단尹慱의 큰아들로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렸난 후에도 계속해서 교류했다.

2부 ‘글씨, 예술이 되다’에서는 부단한 노력 속에 자신만의 서법을 완성한 서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서예와 그림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서화동원書畫同源)는 서화의 전통적 개념을 근대기로 이어준 서화가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난죽서예병풍>, 한글 고체를 탄생시킨 김충현金忠顯(1921-2006)의 <훈민정음반포500주년기념비문>(사진 5)는 그들의 개성적인 서체를 잘 보여준다. 또 전북에서 활동한 황욱黃旭(1898-1993)의 작품(사진 6)은 노년의 수전증을 극복하고 왼손 전체로 붓을 쥐고 쓴 악필법握筆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시실 안의 영상은 1부와 2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편지나 일기를 쓰는 일상과 함께 서예의 예술적 면모를 흥미롭게 담아냈다.

사진5.스승인 정인보鄭寅普가 지은 〈훈민정음 반포 500주년 기념비문〉(1946)을 한글 고체로 썼다. 청년 시절, 한문 서체와 한글 궁체를 연마한 김충현은 훈민정음과 같은 옛 판본체에 전서와 예서의 필법을 가미한 한글 고체를 탄생시켰다. 이 작품처럼 김충현은 강건한 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글 고체로 대자大字나 기념비문 등을 쓰며 한글 서예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사진6. 황욱은 전북을 기반으로 활동한 서예가로 말년에 수전증이 생기자 왼손으로 붓을 꽉 잡고 쓰는 악필법握筆法을 사용했다. 이 칠언시는 문인 송익필宋翼弼(1534-1599)이 친구인 성혼에게 보낸 칠언율시 중 대구이다. 오른쪽으로 쏠린 자형, 울퉁불퉁한 필선, 왼쪽으로 길게 뺀 획은 93세 서예가가 완성한 악필법의 특징이다.

글씨쓰기의 매력과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자 박물관 앞 공간에서 매일 2시간씩 특별전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글씨’는 필름지 위에 한자 또는 한글 단어나 문구를 베껴 쓰는 것으로 필사의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또 ‘살랑살랑 불어오는 글씨’는 전주한지 부채 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보고 도장을 골라 찍어보는 체험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부채를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쓰기는 누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관람자들은 자신의 글씨쓰기를 떠올리며 한국 전통 글쓰기 도구와 서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나아가 눈이나 손으로 한자, 한글을 따라 쓰며 점과 획이 이루는 조형미와 글자의 강약, 리듬감을 즐길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2025년 2월까지 8개월간 진행되며 10월 말에 1차례 전시품 교체가 있다. 곧 어디론가 떠나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서 한국 전통 서예의 매력과 멋을 오롯하게 느끼는 시간을 갖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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