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들.땅으로 흘러가는 빗물.이 땅에 한꺼번에 퍼붓는 억수 장마철이 다가왔다마고(麻姑)가 오염된 마고대성에 천수(天水)를 부어 깨끗이 청소를 하던 날이 언제였든가?세상은 날로 거짓으로 오염됐으니…장자격인 황궁 씨가 대표로 가시띠플로 머리띠를 하면서 마고 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빌고 오미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시 수증복분해서 돌아오리라고 서약했다. 황궁 씨는 마고대성을 출성하여 매우 춥고, 가장 위험한 땅인 천산산맥으로 자처해서 떠났다. 이는 황궁 씨가 어려움을 취해 복본(復本)의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맹세였다. 복본의 주인은 결국 ‘황궁 씨’에게 돌아간 것이다.언제 이 지구는 깨끗해지려나?다시 깨끗해진 마고대성으로 복본하려나?세상이 오염되면 다시 천수(天水)로

日月火水木金土

거인이 있어 지구의 광활한 땅에 쟁기질을 한다.일월화수목금토를 쟁기질로 넘긴다.그렇게 한 주가 넘어가고 한 달이 넘어가고 52주가 넘어가면 1년이 넘어가고온갖 생명들이 생기고 피고 열매 맺고 수확한다.이 시간들이 인간의 일인가. 신(神)의 영역인 것을!시간을 다스리는 건 신이라는 것.해(日)와 달(月)을 음양의 주 성질로 해서 좀 더 역동적으로 다섯가지((木火土金水)가 움직인다는오행(五行)의 집합체가 시간 속에 있다.자연의 변화법칙과 시간은 모두 ‘목화토금수’로 이어져 나간다는 개념이다.이렇게 시간 속에 던져 넣으면 공간이 생기고그 속에 생명 가진 것들이 시간의 리듬을 타고 피었다 지는 것인데거스릴 생명이 있던가.

너무 많아서 없다

너는 없다!너는 너무 많다!내 속엔 네가 너무도 많은 것인가?너무 많은 건 가시가 되고 곳곳에서 꼭꼭 찌른다가슴은 빅뱅이 되어라무한정으로 커져라그것이 무(無)가 아닌가너무 많아서 없다는 것곁에서 0이 빙그레 웃는다따라서 공(空)이 싱긋 웃는다정말 1로 가기가 망설여진다1은 하나로 한정되는 것이 아닌가“나는 없다!”벌거벗은 그대 침대를 파고들면서 하는 말“나는 없다! 날 찾아 봐라!”킥킥킥 컷‧글 | 정노천

솟다

주변보다 높이 세우는 건인간의 욕망이다힘이 세다는 것이다치솟고우뚝 서고높이 오른다는 것솟아오른 저 것을무엇이라 이름 붙일까당간인가 솟을대문인가 일주문일까고인돌인가 탑신인가 첨성대, 피라밋,비석이든 돌탑이든 장승 벅수 솟대 뭐든높이 세우는 것에치솟는 힘이 집중한다.더구나 빳빳이 세우는 남근이라면더욱 힘의 결집체다모든 생명은 열광한다. 컷‧글 | 정노천

회(匯)

남지철교에 서서 보면 강 남단 벼랑 아래 물살이 세차다. 강물이 세찬 곳이 바로 의령에서 흘러오는 대천과 남강이 낙동강에 스며드는 합강지역이다. 옛사람들은 이 지역을 기음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기음강에 서면 바람이 ‘뱅’돈다고 한다. 바람이 뱅그르르르 돈다. 소용돌이다. 깊이를 알 수 없고 방향을 알 수 없는 물살은 사람을 홀린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물을 잠재워야 할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신령스럽다. 물이 있는 곳의 풍경은 불길하지만 아름답다.십리길을 따라 오르면 남지 개비리길을 만난다. 용산리에서 양아지까지 이어진 십리쯤 되는 길이다. 영아지 사람들이 에둘러서 남지 장에 가려면 멀기

자리를 비우다

그대어디로가는 건가무엇을 이루고 가는 건가왜 가려는가.거들먹거리면서어디로 가야 삐까번쩍 빛이 날텐가그대오랫동안 질퍽이다가떠나고 난 자리여기는텅텅 비겠네미우나 고우나함께 했던 자리 컷·글 | 정우제

궁(弓)

양쪽 끝에서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실린다어떤 세력일까하늘이 주는 힘팽팽히 끌어당기는 힘이라면 시위라도 실릴 것인데나름대로 각 잡고 꺾인 힘으로 살을 날리는 만작일 텐데에구머니, 무자비하게 끌어당기는 맹목탄성을 벗어나버리면 날카로운 살도 팽팽한 시위도사라지고 축 늘어져버린 저 몰골무엇에 쓸까제대로 폼 잡고 있을 때,최대의 목적을 향한 힘이 실리는데무작정 끌어당기면파괴밖에 더 있는가팽팽히 당기는 힘은 시위이고팽 놓으면 정확하게 살을 날려 보내야 하는데활을 부셔버렸다면이미 대화는 끝났다. 컷·글 | 정노천

요하(遼河)

멀고도 먼 길 요하 가는 길가도 가도 끝을 잡을 수 없는 길우리 가는 길이 요하가 아닌가!그야말로 요원한 그 강우리가 흘러가는 여정 속에 있다는 것가도 가도 멀어지는 요하지상의 숨결로는 다다를 수 없는 우주오늘도 부지런히 가자 컷·글 | 지묵(之墨)

원방각

부처가 불상으로 나투듯이, 하나님이 십자가(十)로 형상되듯이천방각 이렇게 형체가 지어질 때 각자 개별적인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이것이 천부경에서 발현하는 3수분화가 아닐까?다시 무(無)로 돌아가면 우리 모두의 생명과 유기적인 관계는 될지언정개별적인 삶의 관계에서는 흐려질 것이다 컷·글 | 정우제

갇혀 있는 자들의 슬픔

이 지상으로는 새로운 시간은 오지 않겠지이미 유익한 시간은 텅텅 다 써 버렸으니까세월은 벌써 이만큼 흘렀다시간은 시계 속에 갇혀 있는 것일까?우리는 시간을 말할 때마다항시 시계를 들여다본다불신도들이 부처를 보지 못하고 불상만 보듯이구름 너머로 무한히 떠도는 시간은 보지 못하는가 봐 컷·글 |정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