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2

눈 때문에 길도 미끄럽고 날씨가 흐려지자 차량들이 미등을 켰다. 그런데 남편이 신경질적으로 상향등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었다.“왜 그래?”“저 자식한테 신호를 주잖아. 멍청한 놈, 알아먹지도 못해”“왜?”나는 백미러로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렸다.“첩의 자식새끼 같이 남 생각 않고 상향등을 켜고 지랄이잖아. 대낮부터”‘저 사람은 왜 저렇게 첩의 자식이라면 거품을 물고 화를 낼까?’ 분명 아버님이 어디서 씨앗이라도 봤지 싶어 언젠가 시어머니한테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마작이랑 화투 때문에 속은 좀 썩였지만, 술이나 여자 문젠 없었다. 그런 짓은 절대 안했어.”그런데 왜 남편은 그렇게 첩의 자식에 열을 돋우는

의혹 -1

남편과 아파트를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눈이 오려는지 아니면 바람에 쌓여있던 눈이 날아다니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그렇잖아도 그 간의 폭설로 길이 미끄러운 판인데 또 다시 눈이 내리면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나를 조롱하듯이 눈 가닥이 하나 둘 늘어나며 허공에서 킬킬거리며 웃어대고 있었다. 방향도 못 잡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꼴이 소리 없이 아무 곳에나 대고 웃음을 날려 보내는 미친년 웃음 같다고나 해야 할까?“님이 오려나”생뚱맞게 눈 속에서 갑자기 엄마의 중얼거림이 들여왔다.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엄마는 “님이 오려나”하고 중얼거렸다. 아침부터 창호지 방문 앞에서 까치가 깍깍거려도

알 32

신유리는 아들과 커다란 바위 앞에 쓰러진 채로 누워있었다. 굴은 바위로 굳건히 닫혀있어 누가 봐도 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어디선가 컹컹 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신유리는 꿈결처럼 아스라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두 마리의 세퍼트가 경찰들과 함께 다가와 있었다.“어이, 여기! 두 사람 찾았어.”그녀는 그 말을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엄청난 피곤이 몰려와 도저히 누을 뜰 수가 없었다. 그녀는 꿈결 속으로 빠져들었다.세별이를 만나고 있었다.“미안해하지 마. 우리 인연은 끊긴 게 아니야. 할 일이 아직 남았거든.”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알 29

75 연못태양이가 저승사자의 손에서 빠져나온 일은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저승사자들 앞에서 터벅터벅 잘 걸어가고 있던 아이가 잠시 멈칫 하더니, 무슨 소리라도 들었는지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갑자기 미친 듯이 뛰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신유리도 아이를 따라 정신없이 뛰었다. 그들을 뒤따라오던 처사들은 숲속 어디 쯤 들어서자 무슨 이유에선지 더 이상 뒤를 쫒지 않았다.“왜 그랬던 거야?”“할머니가 빨리 오라고 막 부르잖아.”“할머니? 돌아가신 외할머니?”“아니, 우리 할머니. 친할머니 말야”“에?”그때 옆에서 세별이가 다가왔다.“넌 어디 있을 거야?”“옆을 지나가면서도 모르고, 내가 불러도 쳐다도 안보고 계속 뛰기에 나도 따라서 뛰었지. 뭔

알 23

57 “우와! 드디어 찾았어.” 태양이이 시커먼 돌같이 생긴 알을 들고 소리쳤다. 산꼭대기에서 떨어뜨린 알이 어찌된 셈인지 산 아래까지 굴러와 있었다. 아무리 알같이 생겼다고 해도 겨우 타조 알만한 시커먼 돌덩이와 같았다. 그런 것을 산 속에서 일부러 찾으려면 산을 다 뒤지고 다녀도 결코 눈에 띄지 않을 텐데, 너무도 우연히 그것을 밟게 되니 우연이 우연 같지가 않고 의도 된 것만 같아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마 그들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다른 알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야! 어떻게 또 그렇게 찾나.”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돕는

알 22

54 소지를 태운 재는 눈이 되어 여전히 사방 온천지로 하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요정들이 하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며 허공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큰 돌 산 어디에서 마고 알을 찾아.” 그들은 일단 산을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니 올라올 때 굴에서 나왔던 둥글게 움이 패인 웅덩이가 나왔다. 그들이 굴로 들어가려면 일단 그 웅덩이로 내려가야 할 거 같았다. “이제보니 작은 백두산 천지 같다.” 신유리가 말했다. 위로 그들이 빠져나왔던 굴의 구멍이 보였다. 그리로 들어가면 다신 산

알 21

51 한 개의 문을 열었다. 방안은 안개가 자욱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개가 걷히고 푸른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봄날처럼 새와 벌 나비가 날아다니고 향긋한 향이 공기 중으로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나무 위에 공작 같은 새가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새들이 신유리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크게 깍_하고 울더니 커다란 날개와 꼬리를 펼지고는 퍼덕이더니 하늘을 날아갔다. “공작인가?” “봉황이다. 전설의 새” 신유리가 속삭였다. “여기 너무 좋아, 천국 같아 엄마” 새별이가 소곤 거렸다. 바로 그때 태양이가 새가 앉았던 자리에서 알을 발견했다.

알 20

48 그들은 바위산을 오르고 있었다. 겹겹이 급경사로 이루어진 바위산은 마치 신이 돌을 밀가루반죽처럼 빚어 눌러 옆으로 겹겹이 붙여나가면서 층층이 성의 형태를 만들어간 걸작 품 같아, 겉으로 볼 때야 감탄할 만큼 장엄하고 멋있었다. 하지만, 막상 올라서니 산은 어마어마한 괴물 덩어리였다. 감히 그곳을 오르려는 자가 있다면 누구도 가만 놔두지 않고 낭떠러지로 밀어버리겠다는 괴물의 경고가 느껴지는 듯 했다. “어떻게 저길 다 오르지” 신유리는 몇 걸음도 못 올라가 벌써 지쳐버리고 말았다.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온통절벽이라 발이라도 자칫 잘못디디면 그대로 추락이었다. 그녀는 기차에 다친 손가락들로

알 19

45 섬에서 나가려면 사공을 잡아야했다. 하지만 배 삯으로 수명을 내놓으라니 엄두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를 안타면 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거였다. 제 엄마의 고민을 알아챘는지, 세별은 뛰어가 막 배를 돌리고 있는 사공 노인을 불렀다. “저기, 할아버지, 잠깐만요!” “야! 놔둬. 수명을 달라는 게 말이 돼.” 신유리는 딸을 향해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둔덕의 기다란 풀 위에 몸을 기대고 누워 버렸다. 태양이도 제 엄마 옆에 와서 기댔다. 신유리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 애가 죽은 혼령이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알 18

41 그곳은 익숙한 숲이었다. “우리 혹시 원위치로 온 거 아냐?” “그러게. 뭔가, 도로아미타불 같다.” “우리 새됐어.” 하지만 그곳은 섬이었다. 섬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온통 바닥에 이끼가 수북했다. 한참을 헤집고 다녀도 생명체라고는 나무들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엄마, 여기가 설마 마고의 허달성은 아니겠지?”“절대 아니지” 그런데 어디선가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커다란 바위가 고위 돌처럼 묘하게 세워져있었다. 바위 아래로 비스듬히 커다란 굴 같은 것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들은 소리에 이끌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금살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