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시 만드는 시술소
최초의 기록은 9세기 초 통일신라 흥덕왕 때 등장하며 이전에 환관이 존재했다 해도 허드렛일이나 했지 왕의 비서와 같은 내시부 입무를 맡지는 못했다.15세기 후반에 들어서 성종이 경국대전을 반포하며 환관이 내시부 업무를 맡게 된다.그리고 불법이지만 시술소도 있었는데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은 털끝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라는 성리학적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암암리에 진행됐다.주로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 한양 외곽에서 지금의 영등포 일대의 음막에서 비밀리에 진행됐다고 한다. 원로향토 사학자 김동복 씨 증언에 따르면 고종 34년(1897년) 갑오경장으로 내시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영등포쪽 용추라는 연못 옆에 내시를 양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