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속의 여성, 사소를 말하다

사소(娑蘇)리고 불리는 뜨거운 자유연애주의자가 있었다삼국유사를 보면 기원 1세기를 전후한 무렵에 지금의 경주 땅에 한 여성 지도자와 그녀를 뒤따르던 여성 세력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사소라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함양 박 씨 문중의 <힘양 박 씨 문헌록> 등에는 그녀의 이름이 일명 파사소(婆娑蘇)라고도 표현되어 있음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파사소라는 이름이 지닌 뜻은 각별한 듯싶다. ‘파사(婆娑)는 파사(婆沙)와 비슷한데, 불교 어휘로 쓰일 경우, ‘바사‘로 발음되고, 실제로 ‘비바사(毘婆沙)’와 통하는데. 넓은 말씀이라는 광설 또는 승설로 풀이된다. 따라서 파사소로 불린 사소는 어쩌면 당시 불교

환인 가문의 왕녀인 웅녀, 그녀가 지닌 상징성은 무엇인가

삼국유사의 설화에 보이는 웅녀에 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제왕운기에서 보이는 손녀라는 표현과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웅녀와 손녀가 동일한 존재라면 웅녀는 여자가 되기에 앞서 한 마리의 곰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파헤치고자 하는 까닭이다.먼저 곰에 관해 살펴본다. 곰은 육지에서 최대의 육식류로, 그 가운데에서도 알래스카 큰 곰은 몸길이 280센티미터, 몸무게는 80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사자나 호랑이와 비할 바가 아니다그런데 곰은 그 무거운 몸집과 둔한 듯 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고 돌아다니며 기다란 발톱을 이용하여 굴을 파기도 하고 나무 오르기도 하며

한국사 속의 여성 위인 ‘웅녀’

환인(桓因) 가문의 왕녀였던 웅녀, 혹시 곰의 여왕’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흔히 《삼국유사》 속의 단군왕검 관련 설화에 보이는 곰의 이야기를 두고, 정말 ”어떻게 곰이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나!” 하곤 한다.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곰을 결국에 토템의 흔적으로 여기고 그에 관한 깊은 고민의 수렁에서 벗어난다.여기서 곰이 아닌 사람, 곧 거친 들녘과 동굴을 찾아다니며 지내던 한 여인을 상상해 보자.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상상 속의 여인은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 수렵을 하거나 들의 열매를 따야 했을 터이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 다녔을까?웅녀와 같은 선사시대의

동북아 여성성의 연원과 여성문화의 뿌리

고구려 오회분 4호묘 벽화 속의 월신(月神, 여와) 지금 길림의 집안에 있는 고구려 오회분 4호묘에는 여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해당 무덤의 널방 천장 고임부 하단 삼각고임 중 북서쪽 측면에는 가운데에 천정을 받치는 용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용을 탄 신선, 오른쪽에는 달의 신이 그려졌다. 그 가운데 달의 신이 그려진 모습이 바로 여와의 모습이다. 이 신상은 흰 얼굴에 입술을 붉게 칠한 여자로 묘사됐는데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머리 위로 등근 달을 받쳐 들었다. 달 한가운데에는 두꺼비가 있다. 해의 신과 마찬가지로 하반신은 용의 모습이다. 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