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 역사를 알아?

“당신은 누구냐?” 대뜸 그렇게 묻는다면 어디를 뒤적여서 자신을 꺼내는가?당신이 살아 온 과거를 홀대해버리면 당신이란 모든 인생은 일그러져 버리고 말아무엇으로 당신의 인생을 지탱하고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가?과거를 버린다면 당신을 당신답게 말할 수 있는 정체성을 모두 버려버린 셈이 된다.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불확실하고 의지는 확신이 아니어서 말할 수 없고 오직 경험치인 과거에서 자기 인생을 꺼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낱 과거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가 되는 법이다.우리민족은 모두 우리 것들은 가볍게만 여겨서 홀대만 하는데 당신은 역사를 무겁고 진지하게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우리 것을 끝까지 잘

역사는 현재 우리의 삶과 별개의 것인가?

역사는 현재 우리의 삶과 별개의 것인가? 그 질문에 석연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현재라는 나무의 열매를 성급히 따려고만 하고 한 몸인 뿌리의 존재를 잊고 있다. 열매를 맺기까지 거친 흙을 거머쥐고 영양분을 올려 주는 뿌리를 과거라고 여겨 도외시 하고 현재라는 급급한 삶에 매몰되어 살고 있다고 본다. 내가 태어나서 어떤 유기적인 과정으로 흘러왔는지 역사가 방점을 찍는 과거는 우리의 사실이 축적된 하나의 유기체로 내 삶의 교집합체다. ‘과거의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해야할지’, 혹은 ‘나를 기억해줄거지?’, 그리고 ‘미처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서 나의 이야기를

자연의 이치가 곧 사람 사는 도리

집 근처 산에 올라갔습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벌레 한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슴벌레였습니다. 참 오랜만에 본 것이라 반갑기도 하고, 도회지 한 가운데에서 만나서 그런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제법 큰 놈이어서인지 굼뜬 것을 따라가며 눈요기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감없이 동심을 소환했길레 한참이나 쳐다보면서 녀석의 행태를 지켜보았습니다. 저들도 걷는 걸음마다 희로애락이 작용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이치에 따라 그 행적을 남기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쳐다보는 내가 내 감정에 겨우ㅏ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건지는 모르겠지요. 누가 그들의 생명성을 관리할까요?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지만 헤아릴 수는

신(神)이 준 천부경(天符經)의 수(數)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는 글’이란 뜻의 ‘천부경(天符經)’ 하늘의 이치가 이 경(經)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라고 하면 우리 국조 단군을 말하고 문화라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 ‘천부경’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중종 때 사관이었던 이맥은 <태백일사>에서 ‘천부경’은 동방 최초의 나라인 환국으로부터 구전되어온 경전이라 하여 그 유례를 전하고 있다. 이 ‘천부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단군 시절 그 이전의 한웅 때까지는 말로 전하다가 녹도 문자로 기록하고 그 후 신라 때 고운 선생께서 한문으로 번역해서 81자로 정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