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방(□)각(△)

一始無始一析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일시무시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이인… 무한한 우주에서 본바탕이 나오고 인간(생명)이 나온다. 뭉쳤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뭉치고… 모두 같은 것이다. ‘무(無)’ ‘본(本)’ ‘0(數)’ 원(◯)방(□)각(△) 안에 담겨 다른 모습일 뿐! 컷·글 |정노천

이(以)

우리 민족은 글자 하나를 만들어도 예사롭지 않다. 신과의 관계성이 들어간 신성문자라고 할 수 있다. 뜻 없이 글자를 만들지 않았다. 갑골문과 금문에서 사용하던 우리 동이족이 만든 글자 이(以) 천손민족임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한다. 북극성에서 점지된 생명은 북두칠성의 괴에 담겨서 잉태하고 이 지상으로 내려주는 생명의 씨알 즉 정자다. 하지만 지나족들은 왕이란 권력 독점을 추구하면서 하늘과의 관계성을 모두 차단해버리고 말았다. 제2의 ‘오미의 변’일 당하는 빌미가 됐는데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왕이 되고 하늘과 통하는 모든 관계를 차단하고 자신의 권력을 독점하면서 백성들을 억압하기 시작하는

책을 펼쳐라

책은 만인이 볼 수 있게 만든 공유물이다. 꼭꼭 잠가놓은 자물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즐겁게 책장을 넘겨라! 28수의 별자리를 넘어가듯이 세상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펼친 책 속엔 무진장한 인간의 세상이 꿈틀거리고 있다. 깨어난 자의 우주다. 방황하다가 지친 내 한 몸, 책이 사방을 둘러싼, 작은 다락방에 숨어 있어도 커다란 복락이다. 그 좁은 방에 책이 쌓여있다면 크낙한 행복이다. 책 없는 자여! 더 이상 논하지 말라. 요즘 모 방송에서 방영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다가온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서문에서 ‘누항(陋巷)의 일상 잡사가 아닌,

參=三

삼신(三神)의 삼(三)이나 일본 고사기의 ‘삼(參)‘은 같은 글자다. 일본사서 ‘고사기(AD712년)’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乾坤初分 參神作造化之首(건곤초분 삼신작조화지수) 하늘과 땅이 처음 나누어질 때 삼신이 만물창조의 시조가 되었다.<일본 사서에 나오는 삼신> <신단실기(神檀實記)>에 나오는 삼신의 이야기는 이렇다. 요(遼) 태조가 영천(永川) 목엽산(木葉山)에 사당을 세우고 삼신(三神)의 신주(神主)를 모셨다. 요나라(916~1925) 최초의 임금 태조(재위 916~926)는 영천 목엽산에 사당을 세웠다. 동쪽을 향해 천신위(天神位)를 설치했다. 그 당시 요나라 때는 이미 단군조선의 중심지가 하얼빈 쪽에 있을 때다. 세 번의 단군 조선의 수도가 이동이 됐는데 당연히 동쪽의 단군 신위가 있는

狐에서 人으로

천년이란 세월은 짧은 것일까? 긴 것일까? 그 시간 속에서 얼마만큼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었을 텐데. 그 변하지 않고 내재해 있거나 외부 형태로 지속해 온 것은 무엇인가? 그런 변화와 불멸의 규칙을 겪으면서 몇 만 년이나 살던 인간은 오랜 경험에서 삶의 사유체계를 만들었다. 이런 쟁여둔 노하우를 적용시켜보면 분명 인간은 뭔가 기록해 놓았을 것이 아닐까? 그게 무엇일까? 흔히 우리 민족이 삶의 힌트를 얻는 것이 천부경이라고 하는데 그것에 우리 선조들의 우주적 철학을 숨겨놓은 것일 게다. 우리 민족의 경, 천부경은 이걸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