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정신(kkondae)과 격대교육(grandparenting, 隔代敎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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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대교육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부모를 대신하여 손자와 손녀를 맡아서 교육하는 것을 의미하고, 꼰대정신은 권위주의적이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기성세대나 나이든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이다.
어른이 존재하는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이다. 꼰대짓은 어른으로 예우받지 못하게 하는 자해행위이기에 격대교육을 살려 존경받는 어른의 가치를 알게 하면 좋겠다. 조부모의 날을 만들어 자녀를 축복하고 베푸는 날로 삼아 어른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사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꼰대였다. 할아버지는 향교 출입이 잦은 유림이어서 우리 집에는 흰 도포를 입고 갓을 쓴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방문하곤 하였다. 어르신들이 우리집 대문이나 마당에서 마주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사드리곤 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마당이나 대문에서 인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어르신들이 방이나 툇마루에 좌정을 한 후에 큰절을 드려야 했다. 큰 절도 예법에 어긋나면 다시 시키곤 했다. 우리는 큰절 하는 것이 싫어 동네 어귀에 흰 도포 자락만 보여도 숨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소리질러 찾곤 했다. 결국 끌려 나가 절을 하고 나와야 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나에게 이런 절을 시킨 적이 없었다.
옛말에 ‘아버지는 아들을 안지 않으며 할아버지는 손자를 안는다’ 하였다. 그래서 ‘포손(抱孫)’이란 말이 생겼다. 손자를 본다는 의미이다. 나에게도 손자가 둘이 있는데 5살 1살이다. 떨어져 살기에 명절 같은 날 가끔 보곤 한다. 만날 때마다 안아 주면서 축복기도를 해 주는데 손자들도 할아버지의 기도가 좋은 지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며 같이 기도를 한다. 너무나 진지한 모습에 나도 감동이다. 그러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양아록(養兒錄)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가 있다. 조선 중기 이문건이라는 선비가 손자를 양육하며 쓴 일기이다. 대가족 시대에 얼마나 사랑스러웠으면 할아버지가 육아일기를 다 남겼을까 공감이 간다. 퇴계 이황도 손자와 16년 동안 125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편지를 통해 손자들을 교육하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격대교육의 모습이다. 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내가 편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외할머니 덕분이었다”고 고백하였다. “할머니는 나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며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다”며 조부모에 의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빌 게이츠 또한 “할머니와의 대화와 독서가 나를 만들었다”며 격대교육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에 미국은 1978년부터 매년 9월 첫 번째 일요일을 조부모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러한 격대교육의 가치를 눈여겨 본 노스캐롤나 대학의 엘더 교수팀은 조부모와 손자녀의 상관관계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또 자주 접촉할수록 아이의 성적과 성인이 된 후의 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Brigham Young University)의 연구결과도 조부모와 애착 형성이 잘된 아이들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봉사나 기부같은 친사회 행동(pro-social behavior)성향이 높게 나타난다고 보고하였다. 부모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조부모가 채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인 것이다.

‘꼰대’란 ‘나이든 늙은이’를 말한다. 꼰대정신은 권위주의적이고 고루한 사고방식을 가진 기성세대나 나이든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이다. BBC는 2019년 9월 23일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기는나이 많은 사람’이라 풀이했다.
꼰대란 말은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란 설이 있고, 프랑스어로 백작을 콩테(Comte)라고 하는데, 이를 일본식으로 부르면서 ‘꼰대’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들이 백작이나 자작과 같은 작위를 받으면서 스스로 ‘콩테’라 하였는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 든 세대의 상징인 곰방대가 축약되어 ‘꼰대’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기도 하고, ‘뽐내어 우쭐거리며 하는 고갯짓’을 ‘곤댓짓’이라고 하는데 곤댓짓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 ‘곤대’는 토란의 줄기인 ‘고운대’의 준말로 꼰대와 관계는 없다.

꼰대들이 주로 쓰는 말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젊은 애들은 말이야.’, ‘내가 너희만 했을 땐 말이야.’, 이른바 “라떼는~”이라는 유행어인데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조언이나 충고를 할 때 쓰는 말로 ‘꼰대’들을 비꼬는 말이다. 물론 이 문장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꼰대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폄훼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쉽고 세대간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꼰대를 칭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된 것이다.
꼰대는 성향에 따라 고집이나 편견, 집착과 위선 같은 특정한 행동 양식과 태도를 보인다.

첫째, 고정관념형이 있다.
일반적으로 꼰대는 경험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전통적인 편견과 관습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에 대한 아집을 버리지 않는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가치관도 따라 변화하지만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극히 단편적인 경험을 절대화하고 자신의 편견을 뒷받침해주는 지식이나 정보는 잘 받아들이지만, 그러지 않는 경우 무시한다. 한 문화권 안에서의 특정한 가치나 경험이 다른 문화권이나 다른 세대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오지랖형이다.
꼰대는 여기저기 간섭과 참견을 잘한다.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나 분야일지라도 오지랖을 떨거나 조언을 빙자한 전문가 행세를 한다.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려고 한다. 심지어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복장이나 외모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참견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셋째, 서열중시형이 있다.
꼰대는 나이나 경력 등 서열 정하길 좋아한다. 서열이 낮다고 판단되면 바로 반말로 이어지고, 무조건 따르기를 요구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의 기준은 서열이고 자기보다 서열이 낮다고 판단되면 근거 없이 비하하기도 한다. 설령 자신보다 나이나 경력이 많아도 만만해 보이면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넷째, 자기중심형이다.
꼰대들은 고집과 편견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가치관이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이기적인 인간의 성품이 잘 나타나며, 자신에게 대항할 힘이 없는 약자로 판단되면 억누르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심지어 타인들의 고통과 아픔도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상대가 요청하지도 않는 데 조언부터 하려는 것은 꼰대짓이다. 과거의 경험을 잣대로 현재의 상대방과 비교한다고 하면 꼰대짓이다. 권유하는 말보다 지시하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면 꼰대짓이다. 상대방의 아픔 크기를 다른 아픔보다 작다는 식으로 공감을 얻기 어려운 말을 하는 것도 꼰대짓이다. 능력으로 구분하지 않고 나이나 성별로 구분하거나 서열을 정한다면 꼰대짓이다. 이러한 꼰대짓은 어른으로 예우받지 못하게 하는 자해행위이고 기성세대를 무시당하게 하는 행위이다. 꼰대짓으로 인해 세대간의 소통이 부재하고 반목질시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성장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서로 잘 살기 위해 규범을 만드는 것이지 규범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이젠 고령화 사회로 접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꼰대짓을 하기 쉽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지갑을 풀고 입을 닫고 소통하라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오죽하면 자녀교육의 성공 요인은 할아버지의 재력에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요즈음 부모들은 바쁘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울 지경이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들의 문제 행동이 발견되면 지적질에 익숙하다. 나쁜 말이나 욕설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정신을 좀 먹는 줄 알지만 찌든 삶에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자녀를 향한 선한 말과 축복의 말은 용기와 열정을 일깨우게 하고, 기쁨과 감사와 소망을 준다고 알지만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밥상머리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참된 삶의 자세와 가치교육은 기대치가 높고 욕심이 많은 부모보다 경험과 경륜에서 나오는 조부모가 더 유리할 수 있다.

우리도 조부모의 날을 정하여 격대교육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좋겠다. 핵가족 시대에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명절에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활용하여 추석 다음 날로 정하면 어떨까? 청명한 가을에 느긋한 마음으로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가치와 격대교육의 가치를 살리면 좋겠다. 이날은 의도적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이야기책 같이 손주들이 필요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때로는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를 방문하여 봉사하는 것도 산교육이 될 것이다. 모처럼 가족들이 모인 날인 만큼 세대간에 소통하는 날로 삼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신세대의 행동에 대한 거부감으로 꼰대짓을 하기 쉽지만 조부모의 날을 통하여 지갑을 열고 베품을 통해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날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어른이 있음을 알게 하고 어른은 존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날로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유대균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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