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는 세계 정세

16세기 말은 전 세계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유럽은 종교개혁을 둘러싸고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아메리카는 1492년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침략자들의 식민지가 되어 약탈에 시달렸다.
또한 이슬람 세계에서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주역으로 등장했고, 인도에서는 무굴제국이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이 내부적으로 끊임없는 당쟁 속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일본은 전국시대의 혼란을 정리하고 조선을 침략했다.
이에 비해 17세기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자리 잡는 시기로 동아시아에서는 청이 중국을 차지했고, 서남아시아는 오스만튀르크와 무굴 제국의 지배 아래 번영을 누렸다. 유럽 역시 100여 년간의 종교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았고, 앞 다투어 다른 대륙으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일본의 전국시대
1467년 ‘오닌의 난’부터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를 축출한 1573년까지 100여년의 시기로, 일본 천황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실질적 통치자인 쇼군마저 유명무실해졌다. 장원제가 무너지고 각지의 대영주인 다이묘가 급부상한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가 강력한 다이묘들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심복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사후에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 그 기세를 몰아 조선 침략에 나선 인물이다.

17세기 동아시아를 재편한 청나라 만주족에 대해 알아보자.
만주족은 시대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달랐다. 숙신, 읍루, 물길, 말갈로 불렸고 10세기 초 송대에 이르러 여진이라 불렸다.
여진은 12세기 화베이 지방을 중심으로 금을 세웠지만 몽골에 의해 무너지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만주에 흩어져 살았다.
가까이 있는 고려, 조선의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하면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듯 여진족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에서는 세종 때 김종서와 최윤덕에 의해 4군 6진을 설치하였고, 세조 때 남이장군에 의해 토벌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명의 영락제 때 그들의 본거지인 만주까지 공격을 당한 뒤로는 명에게는 절대 복종으로 조공을 바치며 충돌 없이 잘 지냈다.
하지만 16세기 말, 감히 대적할 수 없던 명이 나라 안팎의 문제로 힘이 쇠약해지자 서서히 독립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갔다.실제로 제도 하에 움직이는 농경민에 비해 유목민의 전투력은 각자 개인의 역량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결속력이 부족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다가도,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 힘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정도로 증폭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1616년 누르하치가 만주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후금을 세웠다. 누르하치는 8기군(깃발의 색깔에 따라 군대를 부족별로 8개로 나눔)이라는 강력한 기병대를 만들었다. 만주족은 몽골족과 마찬가지로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병 전술을 주로 사용했다. 거기다 누르하치는 화포 제작 방법을 명에서 몰래 빼내와 군사력을 키워 나갔다.
이에 명은 후금이 더 커지기 전에 싹을 자른다는 의미로 공격을 강행했으나, 도리어 크게 당하고 랴오뚱 지방을 뺏기게 되었다.

이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고치고 명과 친한 조선을 1627년, 1636년 두 차례에 걸쳐 침략, 명을 돕는 세력을 제거하고 필요한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펼쳤다.
그 사이 명은 내부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 이자성에 의해 무너졌고, 그로 인해 1644년 277년간의 명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청은 명나라 장수의 요청에 의해 이자성을 가볍게 물리치고 당당하게 베이징을 차지하게 됐다.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던 농민군도, 백성들의 믿음을 잃어버린 명의 황실도 청이 손쉽게 중국을 정복하도록 도와준 1등 공신들이다.
하지만 100만의 만주족이 1억 이상의 한족을 다스려야 하는 형국이니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이에 청은 한편으로는 변발령을 내려 한족이 만주족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누르면서, 또 한편으로는 한족의 학문과 문화를 배우면서 한족의 지배층을 달래는 정책을 썼다. 중국의 한족이 타민족을 지배할 때 사용하던 이이제이를 만주족이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근근이 목숨 줄만 부지하고 살던 만주족이 광활한 대륙을 움켜쥐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렇듯 역사는 어느 민족에게도 기승전결을 갖추고 찾아드는 대서사시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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