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묵굿의 서사무가 속 효(孝)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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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정

망묵굿은 죽은 사람의 넋이 편안하게 극락으로 가기 위해 하는 굿이다. 이 굿은 망자를 실은 상(喪)이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며 길게는 며칠이 걸리는 대규모의 굿이다.
굿을 할 때에는 지방마다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산신거리(산거리)로 굿거리를 시작한다. 산신거리는 팔도명산의 산신에게 굿을 한다는 것을 고(告)하고, 굿을 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거리’이다. ‘거리’는 연극의 ‘막’과 비슷한 뜻으로 ‘거리’의 내용에 따라 ‘풀이’나 ‘놀이’ 등으로도 불린다.
산신(山神)은 무속 신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靈)적인 존재이다.
옛날 어머님들이 정안수를 떠놓고 빌었던 기원들이 집을 지키는 가택신(조왕신)을 향한 기도였던 것처럼 우리의 조상들은 주위에 신적인 존재가 있다는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그들의 삶을 지탱해 왔다. 그리고 이 믿음은 마을을 지키는 산신, 혹은 선산을 지키는 신령에 대한 믿음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나누어진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산에 묻힌다. 육신이 묻히는 산은, 그래서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고향과도 같은 의미로 여겨졌다.

산신거리
무속의 학술적 모태가 되는 책으로 『부도지(符都志)』가 있다. 부도지는 신라의 학자였던 박제상(朴堤上, 363~419)이 저술한 『징심록(澄心錄)』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마고신(삼신할머니)이 사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黃穹)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의 한민족의 상고사를 기록한 문헌이다.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존재했다. 그리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곳을 소도(蘇塗)라고 하여 신성시했다. 소도에서 가장 큰 나무에 옷을 입히고 방울과 북을 매달았다는 기록이 『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진서(晉書)』·『통전(通典)』 등에 있으며 이 큰 나무를 환웅(桓雄)으로 여기며 제사를 지냈다. 훗날 지상으로 내려온 한민족의 후예들은 삼신할머니가 계시는 마고성의 계시를 듣기 위해 가장 높은 산을 택하여 그 정상에 제단을 만들고 제를 올렸다. 그러면서 차츰 산은 신선(神仙)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여기며 신성시했고, 굿거리를 시작할 때 산신거리로 시작하는 것은 신에 대한 경외의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위의 노랫가락은 산신거리의 내용 중의 일부이다.
무속의 역사는 1만1천여 년의 지고한 세월 동안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왔다. 그 때문에 노랫가락들은 지방마다 굿을 집전하는 무당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본질적 내용은 ‘부모가 나를 나아주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한결같이 효(孝)를 지향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효를 지향하는 서사무가로 앉인굿 혹은 감천굿이라고 불리는 서사무가가 있다.
흔히 <효자와 동자삼>이라는 설화라고도 불리워지기도 하는데 그 내용 역시 효를 지향하지만 효에 대한 극단적인 딜레마를 제시한다.
<잔혹동화>라는 동화가 몇 년 전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아이들 눈높이로 맞춰 꿈과 희망을 주었던 동화들이 원작과 다르거나 결말이 잔인하게 끝난다는 내용이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콩쥐팥쥐>의 결말은 무척 당혹스럽다. 한 예로 <백설공주>의 원작은 왕자와의 결혼으로 권력을 가지게 된 백설공주가 새엄마인 왕비를 찾아가 불에 달군 쇠구두를 신겨 형벌을 내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는 내용이다. 착한 줄 알았던 백설공주의 역설적인 잔인한 복수극이었다.
충격적 표현이 사람들의 내면에 쉽게 각인시킬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감천굿에는 죽을 병에 걸린 시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살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식을 삶아 먹어야지만 시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선택에서 결국 자식의 희생을 선택한 어머니. 그 선택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아들을 동자삼으로 대신해 결국 효를 행하게 했다는 서사무가의 중심에는 “어버이는 다시 모실 수 없지만 자식은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효심에 대한 선택적 딜레마를 강요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하늘이 감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성이면 감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예이다.

옛날의 효와 현재 효
현재에도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물질적 기반이 없으면 효를 행하기 힘든 사회가 되었고 마음만으로 부족할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부모님 병환으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래서 이혼하거나 별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고민을 해소하고자 찾아오곤 한다. 무당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자식과 부모를 선택해야 하는 효의 실행에 대한 자식들의 고민을 더욱 많이 듣게 된다. 그렇게 옛날의 효를 그대로 이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요즘 젊은 층에서는 명절마다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보다 나를 위한 여행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식의 인생과 부모의 인생은 별개’라는 의식이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에 따라 효의 가치관이 달리진 이유로 의술의 발달과 기대수명의 증감, 노인복지제도(요양시설)의 활성화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요양원에 대한 찬반 의견도 우리 사회가 풀어나갈 문제이다. 언론에서는 종종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질타를 한다. 때때로 요양원에서 멸시를 당하는 부모님들의 이야기도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그럴 때마다 요양원이란 제도는 고려장이라는 옛적의 악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부모님을 집에서 같이 모시고 산다고 한들 바쁜 현대 사회에는 부모님을 방치 수준으로 내몰게 만든다. 현실이 그렇게 강요하게 만든다.
요양 시설에서 또래의 친구분들도 만나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쩌면 부모님들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경자 망묵굿보존회 회장

서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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