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짱짱, 허리는 낭창, 짱짱 낭창 프로젝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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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인간이 대지를 딛고 서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직립(直立)은 중력을 이겨내는 일이다. 인간의 몸은 한 개의 막대기나 파이프가 아니다. 206개의 크고 작은 뼈가 근육과 인대, 360여개의 관절과 결합된 채,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인간의 몸을 하늘로 향해 세우는 작업은 고도의 정밀한 기계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간난아이는 걷기 위해, 아니 서기 위해 수십만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 인간은 설 수 있는 기능을 잃어 버리고 누워있다가 숨을 거둔다. 살아 있는 동안 잘 서 있다가, 잘 걷다가 죽는 것이 건강한 인간의 바램이다.
나이들면 오금이 구부러진다. 다리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오금이 무너지면 인간은 어정쩡하게 걷게 된다. 인간의 걸음걸이가 아니라, 유인원의 걸음걸이가 된다. 오금을 끝까지 팽팽하게 사수해야 한다. 그래야 늠름하게 설 수 있다.


오금은 무릎 안쪽 오목한 부분이다. “오금이 저린다”는 말은 무서워서 꼼짝 못하는 상황이다. “오금이 쑤신다”는 것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오금을 편다”는 것은 불안함이 없는 편안한 상황이다. 오금은 신체의 편안함과 불편함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오금은 무릎 위쪽과 아래쪽의 근육이 이어지는 분기점이다. 위로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거쳐 허리까지, 아래는 종아리와 발까지 근육이 이어진다. 오금의 상부와 하부 근육은 서로 당기면서 균형을 유지해 다리의 추진력을 갖게 한다. 오금의 부드러운 펴짐과 굽힘이 육체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하는 기반이다.
젊었을 때는 오금을 부드럽게 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것에 비해, 나이가 들면 오금을 펴는데 집중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쪼그러들기 때문이다. 근육과 인대가 수축하는 데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무릎이 굽혀진다. 의도적으로 오금을 펴지 않으면 반듯하게 펴진 다리와는 이별이다. 무릎은 몸의 기둥 역할을 한다. 기둥이 무너지면 건물 전체가 다 무너지듯, 무릎이 구부러지면 몸 전체가 굽는다.
일상에서 오금을 펴는 습관을 들이자. 치아를 닦을 때, 허리를 구부리지 말고 오금에 힘을 주자. 지하철에서 서서갈 때 짝다리를 하지말고 오금에 힘을 주자.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릴 때, 허리와 오금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자.

한민족 전통신선술인 혈기도의 가장 핵심 수련은 ‘허리 굽혀 펴기’이다.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채 서서, 상체를 앞으로 반복적으로 굽히는 동작이다. 요추를 부드럽게 하고, 강화시키는 동작이지만, 오금을 펴는 동작이기도 하다. 이 동작은 생명의 근원인 척수를 맑게 하고 충만하게 만든다. 척추의 뒤틀림을 펴주고, 오장 육부의 기능을 강화시킨다. 허리를 곧게 하고, 골반의 균형을 잡아준다. 혈기도 행공의 종합판이자, 꽃으로 불리는 동작이다. 물론 쉬운 동작은 아니다.
앉은 자세가 아니라 선 채로 상체를 앞으로 굽히는 동작은 초보자들에겐 부담스럽다. 허리의 힘으로 굽혔다가 폈다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허리에 힘을 준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굽혔다가 펴는 동작을 하면 허리가 아파 오래할 수 없다. 허리에 힘을 빼고 몸을 놓아야 한다. 몸을 놓는다는 것은 다리(오금)를 편 채 상체를 숙여 그냥 늘여뜨리는 동작이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흔들, 낭창낭창 움직여야 한다. 이 동작을 하다보면 뒷꿈치-아킬레스건-종아리-허벅지-엉덩이-허리-등-목-머리까지 하나가 되어 팽팽해짐을 느끼게 된다. 오금에 신호가 빨리 온다. 평소 오금을 펴는 동작을 하지 않는 이들은 오금에 강한 전기자극이 오는 듯, 짜릿짜릿하다. 심하면 못 견딜 정도이다. 수축됐던 오금이 펴지기 위한 진통이다. 그런 아픔을 견뎌내면 오금이 시원해 진다.
상체를 흔들 때 머리부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랫배부터 움직여야 한다. 아랫배가 허벅지에 닿고, 가슴이 무릎에 닿고, 머리가 발등에 닿는 느낌으로 흔들어야 한다. 마치 긴 줄의 그네가 앞 뒤로 움직이는 모습이어야 한다. 꼬리뼈와 엉치뼈가 허리와 직선이 되게 펴야 한다. 제대로 된 동작이 되면 온 몸의 혈문이 열린다. 땀이 쏟는다. 혈문이 열리면 천기(天氣)을 받아들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허리굽혀 펴기를 오래하면 오목했던 오금이 튀어 나온다. 혈기도를 오래 수련한 분들의 오금을 만져보면 마치 굳은 살이 배긴 것처럼 오금이 만져졌다.
오금이 아픈 고비를 넘기면 오래 할 수 있다. 아프다고 일찍 포기하면 안된다. ‘기쁜 아픔’을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아픔은 사라지고 맑고 상쾌한 새로운 기운이 들어온다. 처음엔 5분을 목표로 하다가 점차 시간을 늘려가자. 30분을 쉬지 않고 하면 오금이 펴진다는 느낌이 든다.


팔단금에서도 오금을 힘차게 펴는 초식이 있다. 바로 3초식인 조리비위수단거(調理脾胃須單擧)이다. 한 손을 들어 비장과 위장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동작이다. 두 손을 반대 방향으로 힘차게 민다.
두 손을 반대로 미는 과정에서 비장과 위장이 자극된다. 비장은 오래된 적혈구를 파괴해서 피를 맑게 해준다. 면역기능을 강화해주고, 인체에 있는 세균을 죽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장의 위치는 왼쪽 갈비대가 끝나는 곳으로, 명치와 위의 뒤에 있다. 동양의학에서 비장은 흡수한 음식물을 기(氣)와 혈(血)로 바꾸어 근육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비장의 기능이 나쁘면 얼굴색이 누렇게 되고 윤기가 사라진다.
위장은 에너지 공급의 공장이다. 흡수한 음식물을 소화시켜 인체가 움직일 수 있는 기운을 생성하는 곳이다. 만약 위가 나빠지면 기운을 못쓰고, 인체 각 기관의 기능이 약화된다. 기운 기(氣)자의 가운데는 쌀 미(米)가 있다. 밥을 먹어야 기운이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여러 먹거리가 있지만 한자가 만들어질 때 최고의 영양 공급원은 쌀이었을 것이다. ‘비위가 상한다 ’는 말은 곧 소화가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궁보를 한 채 한 손을 낮고 깊숙하게 아래에서 위로 쳐 올린다. 복싱의 어퍼 컷 동작이다. 주먹 쥔 손을 펴서 궁보의 앞발 앞쪽에 내민 채 몸을 반대쪽으로 회전한다. 땅에서 물을 살짝 퍼 올리듯 손바닥을 뒤집어 천천히 얼굴 위로 올린다. 그리고 45도 각도로 뒤집으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한다. 동시에 반대쪽 손바닥은 땅을 향해 펼친다. 두 손의 손바닥 방향이 절반대이다. 이때 비장과 위장이 강렬한 자극을 받는다. 뒤로 뻗은 다리의 오금을 힘껏 편다.
허리는 반월의 부드러운 각도를 유지한다. 고개는 약간 올려서 하늘을 향한 손등을 바라본다.
오금을 펴고, 비장와 위장을 튼튼히 하면 건강한 삶의 기본이 마련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아이의 몸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엄청난 기쁨이다. 남들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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