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처럼 아름다운 팔단금(八段錦)

팔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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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퇴계 이황(1501~1570)은 만 70세가 되던 해 숨을 거뒀다. 그날 아침 평소 사랑하는 매화에 물을 준 뒤 앉아서 세상과 하직했다. 퇴계의 마지막은 그의 생전 성과에 가려 그리 조명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30살 정도의 평균 수명에 비해 크게 장수한 점과 누워서 숨진 것이 아니라 앉아서 숨을 거둔 것은 평범한 세상과의 하직이 아님이 분명하다. 생전 관직 생활과 운둔, 사화에 연루돼 귀향을 반복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퇴계가 장수와 함께 도인, 신선들만의 점유물로 알려진 좌탈입망(坐脫立亡)의 모습을 보일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활인심방(活人心方)이다. 성리학자며 의학자이기도 했던 퇴계는 전래의 신선도인술을 익혀 평생을 수련했고, 활인심방이라는 책도 썼다. 퇴계는 아침에 일어나 수련을 했고, 일상생활 틈틈이 전신운동을 소흘하게 하지 않아 건강한 장수를 할 수 있었다.
안동 도산서원의 퇴계가 생활했던 방은 두 평도 안되는 좁고 검소한 방이다. 퇴계는 그 좁은 공간에서 활인심방을 하며 웰다잉을 꿈꾸었고, 결국 후손들에게 멋진 이승의 마무리를 보여준 것이다. 활인심방에는 호흡법과 다양한 운동방법,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이 담겨져 있다. 심지어 소리를 통한 건강법도 있다. 퇴계는 사계절에 다른 소리를 내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했다. 봄에는 휴~ 소리를 자주내면 눈이 밝아지고 이가 튼튼해지고, 여름에는 하~하면 마음의 걱정이 사라진다고 했다. 가을에는 스~하면 간 기능이 좋아지고, 겨울엔 취~소리를 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했다.


지금도 퇴계의 15대 자손들이 안동에서 활인심방을 전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퇴계는 활인심방의 건강술을 스스로 만든 것일까?
아니다. 퇴계는 명나라의 건강서를 받아들여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중국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열여섯째 아들인 주권(朱權)이 지은 책이다. 원래 제목은 ‘활인심(活人心)’. 주권은 도인(道人)’이라 불릴 만큼 도가(道家)에 조예가 깊었다.
활인심은 주권이 전통의 도인 양생술을 정리한 책이다. 그 전통의 도인 양생술이 바로 팔단금이다. 그러니 활인심방의 원전이 팔단금인 것이다. 건강 수련체계에 비단금자를 넣었다. 동작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준다.
팔단금은 애초 중국 도가의 도인양생술이다. 도인술(導引術)은 온 몸의 관절을 펴거나 굽히며, 신선한 공기를 몸속에 들여와 기혈을 원활하게 하는 각종 건강체조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 전통의 3대 도인술이 있는데 달마대사가 만들었다는 역근경과 명의 화타가 만들었다는 오금희, 그리고 팔단금이다.
팔단금은 여덟개의 간단한 초식으로 구성됐다. ‘팔단(八段)’이란 이 공법이 여덟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뜻이고, ‘금(錦)’이란 그 자세가 아름답고 부드러워 비단 같다는 뜻이다. 이 공법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도인술의 동공(動功)과 정공(靜功)을 결합한 전형으로, 고대 양생사와 도인 발전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팔단금은 남조 양나라(502~557) 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역사가 길다. 양나라 시대에 도홍경이 쓴 <양성연명록>의 일부 동작은 팔단금의 일부 정형화된 동작들과 비슷하다. 팔단금이 구체적으로 형성된 때는 송나라(960~1279) 시대이다. 팔단금이라는 이름은 최초로 북송의 홍매가 엮은 <이견지(夷堅志)>에 수록되었으나 팔단금의 구체적인 공법은 실려 있지 않다. 남송으로부터 두 가지 팔단금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하나는 증조(도교학자)의 팔단금이고, 또 하나는 여덟신선의 한명으로 전해지는 종리의 팔단금이다.
팔단금은 명청 시기에 이르러 큰 발전을 가져왔다. 주권의 ‘팔단금도인법(八段錦導引法)’에는 팔단금은 각 동작마다 일곱개 한자로 이름을 붙였다. 당시에는 곡조까지 붙여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초식별로 일곱글자의 제목과 곡조를 붙힌 가결(歌訣)과 작은 글씨로 된 주석이 있고, 8폭의 좌공도가 그려져 있고, 그림마다 명칭이 있다. 그 공법의 동작이 전면적이고 기억하기 쉽고, 실행이 쉬울 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수련하기에 적합해 광범위하게 전파되었고 한다.
또 팔단금의 동작을 더욱 축약한 사단금도 있다. 결국 팔단금은 기존의 복잡한 건강술을 대중이 배우기 쉽게 줄이고 줄인 동작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다.
팔단금은 배우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효능이 좋다는 소문이 나며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가문에서 대대로 전수되어 왔고,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귀한 비단과 같은 대우를 받아 자자손손 전해 내려오고 있다.
팔단금은 민간에 널리 행하여 졌을 뿐만 아니라, 궁정에서도 성행했다. 황제들이 신하들과 함께 수련을 했다고 한다. 삼국시대 제갈량과 위문제, 진나라의 문인서예가 왕희지, 저명한 문인 이백, 소동파, 송나라의 주자학자 주희, 명장 악비,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 부자와, 청나라 건륭 황제와 자희 태후, 근대 중국의 국가 주석 모택동과 주은래 총리부부 등 모든 사람들이 즐겨 수련을 했던 건강체조였다. 현재 중국에서도 전체 성과 현의 지방 자치단체에서 보급하고 있고, 각급 학교에서도 팔단금을 활발히 보급하고 있다.


한국에 팔단금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는 백오 김성욱이다. 주역학자인 백오는 뛰어난 한문 실력으로 우연히 팔단금을 익히게 됐다.
지금도 치악산에서 칩거하며 주역을 연구하고 있는 백오 선생은 어릴때부터 부친으로부터 한문과 천문, 그리고 주역을 배웠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기업체에 취직했다가 스스로 그만 둔 그는 주역 연구에 평생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당시에 주역을 가르치는 곳이 없어 선생을 만나지 못하여 관련 서적을 사서 독학했다. 운동은 하지않고 주역에만 몰두하다보니 몸이 비대해지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온갖 병마가 찾아왔다. 몸에 좋다는 약을 다 먹어도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그 부작용으로 고생하였다. 서적과 온라인 영상을 통하여 중국의 3대 기체조(도인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승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2009년 여름에 지인이 한 분을 소개해서 같이 식사는 하게 되었다. 그분 나이가 일흔이라고 했다. 말라서 약해 보였으나 행동거지가 남달리 민첩하고 오래 걸어도 조금도 피곤함이 없었으며, 다들 다리 아프다고 앉아 있는데도 혼자 서 계셨다. 여럿이 함께 경사가 급한 산을 오르는데, 뛰어서 오르고 또 뛰어서 내려가셨다. 그리고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녹다운 상태인데 혼자 몸이 경쾌하셨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팔단금을 오랫동안 수련하였다고 하였다. 그 분은 대학 교수로 한문 해석에 막힌 부분이 있었는데 백오 선생이 이를 쉽게 풀어 줬고, 대학 교수는 그 보답으로 팔단금을 가르쳐 줬다. 대학 교수는 중국에서 유학하며 팔단금을 배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초식씩 배웠고, 다음 주에 만날 때까지 그 동작을 완벽하게 익혔다. 처음에는 동작이 간단해서 쉬워 보였는데, 하면 할수록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고 한다. 굳어진 몸을 뒤틀고 젖히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와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기도 하였다. 또 인대가 손상되어 고생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동안 워낙 운동을 안해서 그런 것이었다. 대학 교수는 이런 당부했다고 한다. 선인에게 가르치고 악인에게 전하지 말라였다. 곧,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非人不傳)이다. 백오는 팔단금을 하기전 키 166㎝에 80㎏였는데, 집중수련한 지 3개월 만에 몸무게가 10㎏가 빠졌고, 6개월 뒤에는 66㎏가 되었다. 8개월 뒤에 몸은 가벼워지고 몸이 가벼워지니 정신이 맑아졌다. 정신이 맑아지니 생각도 긍정적으로 하게 되었다. 산만함이 없어지고 집중력이 좋아져서 두꺼운 책을 쉬지 않고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근기도 생겼다. 몸이 건강해짐은 물론 기력이 증진되니까 자신감도 생겨서 일에 대한 열정이 증가되었다. 백오는 여든 살의 무술의 고수를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자신은 자동차 스프링을 부러뜨리는 괴력(차력)을 가졌는데, 팔단금 동작 중에서 활쏘기 동작(제2초식)만 30년 했다고 하였다. 전심전력하여 이 동작을 하루에 30회 이상 3년 하면 괴력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서양운동은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데 비해 동양운동은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다. 동작이 빠르면 효과는 빠르나, 혈기의 손상이 염려되고 동작이 느리면 효과는 느리지만 기를 축적할 수 있다. 빠른 공법은 피를 끓게 하고 느린 공법은 기를 온축한다. 빠른 공법은 신속하지만 가볍고 느린 공법은 완만하지만 무겁다. 팔단금은 느리게 힘있게 하는 것을 골자로 삼는다.

1초식 양수탁천리삼초(兩手托天理三焦)
2초식 좌우개궁사사조(左右開弓似射雕)
3초식 조리비위수단거(調理脾胃須單擧)
4초식 오로칠상왕후초(五勞七傷往後焦)


백오 선생에게 팔단금을 배운 필자는 수 년전부터 고도원의 아침편지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초동 아버지센터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팔단금을 보급해 왔다. 또 홈플러스의 문화센터와 각종 기업체 건강 강의를 통해 팔단금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대한팔단금협회를 창립해 광범위한 보급의 기틀을 마련했고, 최근엔 <오! 나의 팔단금>이라는 팔담금 소개 책자를 펴내기도 했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병이 나고 몸이 망가져 누워서 연명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하다. 죽기전까지 씩씩하게 걷다가 잠시 누워서 이별을 나누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평생 애써서 번 돈을 의료기관에 바치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가족, 지인에게 모두 안타까운 일이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만 건강할 때 애쓰면 인명은 재아일수도 있다. 특히 복잡하고 배우기 어렵고, 금방 까먹는 운동보다는 한번 익히면 죽을 때까지 혼자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운동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5초식 양수거족고신요(兩手攀足固腎腰
6초식 요두파미거심화(搖頭擺尾去心火)
7초식 촬권노목증기력(撮拳怒目增氣力)
8초식 배후칠전백병소(背後七顚百病消)


다음호부터는 팔단금의 각 초식별 운동방법과 효능을 자세하 소개하고자 한다. 단지 여덟가지 초식이다. 한번 하는데 10분이면 된다. 단순하면서 재미있다. 그리고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골고루 움직일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행이다. 신선들이 소나무 아래서 한가하게 바둑이나 두며 장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틈나는대로 운동하고 수련하고, 걷고 뛰어 다녔다. 신선은 피와 땀의 결정체인 것이다. 이제 당신이 현대의 신선이 될 차례이다.
서초구 아버지센터(02·2155·8399)에서는 주 2회 팔단금 수련 교실 (지도사범 신제식 010·6243·5239)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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