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사관과 민족개념의 탈피해야 삼국사와 동이전이 보인다

반도사관과 민족개념의 탈피해야 삼국사와 동이전이 보인다
고리(高麗) 이전의 역사는 삼국사와 동이전으로 밝혀진다. 고구리는 연방으로 가한지역을 포함하는데 마립간도 가한이므로 조선8도에서 선비가 진출한 헝거리와 돌권이 진출한 튀르케까지 고구리 강역이었다. 또한 유‧연‧제‧로와 오‧월 지역까지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성계의 조선은 압록강–두만강 남쪽 사람들만을 동족으로 보고 삼국사와 동이전의 역사도 조선8도에 맞추어 왔다. 그리고 조선8도 사람만을 민족으로 보고 그 북쪽인을 다른 민족이라면서 여진족이라 말한다. 여진족은 고구리, 발해의 민족인데 그들을 배제하면서 역사는 우리역사라고 말하는 모순된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한(조선)민족은 이성계 조선인만을 기준으로 하면 1392년 독립한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 고리와 신라는 滿鮮(만주와 조선8도)을 통치했으나 만주인을 배재하는 것이다.
삼국사와 동이전 역사를 조선8도에 맞추어 온 것이 일연의 삼국유사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소동파의 지장도에 의해서 동이전을 외면한 왜곡된 역사에 기인한 것이다.
소동파에 의하여 왜곡된 역사를 일연과 신채호의 이론에 따른 현행 국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삼국사와 동이전에서 말하는 동이강역인을 민족으로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13세기 원이 차지한 지역과 고리지역이 고구리 강역이었다. 이성계조선인만을 민족으로 보고, 삼국사와 동이전이 말하고 고리 이전을 버린 민족용어를 벗을 용기가 없는가?

삼국유사부터 감춰버린 최치원의 신라는 오‧월과 제‧로 사이
일연이 최치원의 상대사시중장을 인용하여 삼한을 말했으나 고구리(高句麗), 백제, 신라 위치를 숨겼다. 즉 동쪽 넓은 곳에 세 나라가 있는데 마한, 변한, 진한이다. 마한은 高句麗이고,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이다. 고구리, 백제가 전성기에 강병(强兵) 100만으로 남으로 오‧월(吳‧越)을 다물(침범)하고,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점유(다물-多勿)하여 장안조정의 근심거리였다(高麗百濟全盛之時强兵百萬南侵吳越北撓幽燕齊魯爲中國巨蠹)

    상대사시중장의 고구리, 백제가 남으로 오‧월나라를 침범하고 북으로 유‧연‧제‧노나라를 흔들었다는 지역 오‧월과 제‧로 사이에 사로신라가 있다고 하여도 대능하 동쪽 즉 고구리장성 동쪽에 마립간에서 왕이라고 칭하면서 503년에 독립한 신라가 있었으며 615년 이전에 이미 광녕과 길림 동쪽까지 통치한 신라가 있었다.

    일연은 동파의 지장도를 맹신하여 오‧월과 제‧로 사이 신라를 감추고, 취사선택이란 명분으로 삼국사재현을 하지 않았다.
    일연이 김부식찬삼국사와 지나18사동이전보다 소동파의 지장도를 더 믿고 상대사시중장에서 고구리 백제 신라 위치를 숨겼다. 일연이 지장도에서 남북흑수 남쪽에 진한이 있다고 하며 한을 만들었으나 한은 상대사시중장과 삼국지 후한서 한 위치를 벗어날 수가 없다.
    소동파는 고금화이구역도총요도를 만들어 고금이라고 했지만 今(高麗 요, 송)이 없다. 더욱이 역대화이산수명도가 화이는 즉 장안과 四夷는 지나 대륙에 있음을 말해주니 東夷를 황해 밖으로 밀어낸 고금화이구역도는 동이를 밀어냈음을 스스로 자백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연은 단 한 장 밖에 없는 고금화이구역도를 믿고 취사선택하고 말았다. 분명 일반적인 상황하에서는 취사선택 방법이 준용된다. 그런데 하나 밖에 없는 삼국사에서 취사선택하면 믿지 못한다는 뜻으로 보면 高麗이전을 복원할 수가 없다. 동이전이 있다고 하나 그 또한 삼국사와 같기 때문에 취사선택이라는 방법으로 삼국사와 동이전을 조선8도에 맞추기 위하여 일연부터 시작했고,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字句를 수정해서라도 맞추고 있다. 일연부터 시작된 이 방법으로는 조선8도 역사는 창작할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와 동이전을 재현하여 보고 삼국사와 동이전이 추구하는 우리역사의 기준을 왕검 조선이 아닌 그 이전 구리(九黎)시대로 하고 그 후예를 동족으로 본다면 작금에 고구리, 발해는 우리역사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한민족이요 압록강-두만강 밖에는 여진족이 있다며 고구리, 발해 역사까지 버리는 버릇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취사선택이라는 말 때문에 일연이 삼국사와 동이전을 대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역사를 왜곡하고 창작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삼국사와 동이전으로 高麗이전을 재현하여 우리역사를 바로 알겠다는 것이지 창작된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과 역사는 가치 기준이 다르다. 역사에서는 교훈을 찾을 수 있지만 창작품은 결코 역사를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이제라고 삼국사를 조선8도에 맞추는 연구가 아닌 재현해 본다는 마음으로 삼국사와 동이전을 대하면서 바르게 재현해야 한다.

    상대사시중장을 남제서권58, 삼국지권30, 후한서권85가 입증한다.
    현재까지 삼국지권30 후한서권85 동이전을 황해 동쪽 역사 기록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삼국사기권46 상대사시중장에서 말하듯 남으로 오월, 북으로 유‧연‧제‧로 기록임을 확인하여 준다.

    상대사시중장을 남제서권58이 입증하고 당서가 입증한다
    상대사시중장에서 고구리, 백제가 남으로 오‧월을 침범하고, 북으로 유‧연‧제‧로를 흔들었다고 했는데 남제서권58 동이지역과 같은 지역이다.
    남제서권58이 삼국사기권46 상대사시중장을 입증하므로 삼국지 후한서가 입증함에도 일연은 삼한이 삼국으로 발전함만 기록하고 고구리, 백제가 남으로 오‧월, 북으로 유‧연‧제‧로를 차지했음을 외면하고 반도사관을 만들었다. 이것은 소동파의 지장도를 맹신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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