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섬에서 나가려면 사공을 잡아야했다. 하지만 배 삯으로 수명을 내놓으라니 엄두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를 안타면 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거였다.

제 엄마의 고민을 알아챘는지, 세별은 뛰어가 막 배를 돌리고 있는 사공 노인을 불렀다.

“저기, 할아버지, 잠깐만요!”

“야! 놔둬. 수명을 달라는 게 말이 돼.”

신유리는 딸을 향해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둔덕의 기다란 풀 위에 몸을 기대고 누워 버렸다. 태양이도 제 엄마 옆에 와서 기댔다.

신유리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 애가 죽은 혼령이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식의 수명을 줄여서까지 탈 수는 없었다. 자신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의 명을 줄인다는 건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만 먹이고 싶고 똑똑하게 잘 키워서 행복하게, 무병장수하며 잘 살도록 해주고 싶은 게 부모들의 심정 아닌가. 자신의 생명을 줘서라도 자식의 수명을 늘려주진 못할망정, 아이들을 30년이나 빨리 죽게 한다? 그것은 절대 못할 짓이었다. 내 아이들을 희생해야한다면, 남편도, 세계 평화도, 마고시대의 지소도, 무당 선화도, 금소화도 다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목적은 오로지 죽은 아들을 무사히 살려 이승에 돌아오게 하여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거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생명을 달라니.

그녀는 지구가 폭발이나 세상 멸망을 구하는 일이라고 했어도, 자신의 아이를 희생하라면 절대오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 때문에 저승에 올리도 더더욱 없었다. 남편이 죽는다면 가슴이야 아프지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태양이가 죽는다면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생각이 점점 그런 식으로 엉뚱하게 치닫고 있던 중에 돌연 사공과 얘기를 하고 있는 세별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 사람 몫의 배 삯을 한 사람이 낼 수도 있습니까?”

“명이 된다면야 그럴 수도 있지.”

“수명이 된다면 제가 동생과 엄마 것을 다 낼게요.”

노인은 깜짝 놀라 세별이를 쳐다보았다. 잠시 말없이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던 사공이 중얼거렸다.

“낼 수는 있겠다만, 그러면 남는 수명이 거의 없어.”

“네. 괜찮습니다. 슬프긴 하지만…”

눈물을 글썽이는 세별이의 눈과 달리 입은 애써 활짝 웃고 있었다.

“다행이 무병장수할 명이구나, 네 어미가 쌓은 공덕이다.”

“제 수명이 100살 넘습니까?”

“100하고도 열이다. 이런 내가 너의 마음씨에 놀라 그만 천기를 누설해버렸구나. 내가 너 때문에 천기누설을 범한 벌을 받아 여태껏 애써 모은 수명을 다 빼앗기게 생겼다.”

“죄송합니다. 다시 제걸 가져가 채우시면 되잖습니까?”

“그래야 겠구나.”

갑자기 사공노인의 말에 점점 기운이 없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편찮으십니까?”

“너 때문에 명을 빼앗긴다고 하지 않았느냐!”

노인은 기운을 잃는 중에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운 내십시오, 할아버지. 동생이랑 어머니를 모시고와 얼른 타겠습니다.”

“그러시오. 내 명은 바리공주님의 덕입니다.

노인이 갑자기 존댓말을 했다. 그리고는 기운이 없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동생이랑 저희 엄마한테 말하지 마세요. 엄마가 알면 절대 타지 않을 거예요.”

“그리되면 내 명을 어찌 채울까나.”

사공이 혼자 중얼거렸다.

세별이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태양아!”

목청껏 동생과 엄마를 불렀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왜 소리 질러. 귀 안 먹었거든.”

상황을 모르는 태양은 제 누나를 향해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세별은 웃었다. 막상 자신이 정한 일이긴 하지만 자꾸 눈물이 나와 일부러라도 웃어야 했다. 아이는 티 나지 않게 얼른 눈물을 훔치고 방긋 웃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태워주시기로 했어.”

“그냥?”

“어”

“어떻게 했기에?”

“내가 한 미모 하잖아. 이 아름다운 미모와 말솜씨로 구워삶았지.”

“와! 누나 짱이다.”

“정말야?”

“정말이지 그럼, 내가 왜 거짓말을 해?”

“뭐라고 했는데?”

“시클릿”

“치사하게, 비밀은 또 뭐야. 뭔가 수상해…”

신유리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딱히 방법이 없어 일단 아이들과 배에 올라탔다.

“어르신, 정말 고맙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배에 올라 사공 노인에게 절을 했다.

“만물은 이치대로 흐르는 법,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고마움은 저 바리공주님께나 말하게나. 저 너머에도 비리공덕 부부가 바리공주 덕에 살고 있네, 네 선행이 공덕으로 돌아왔기는 하나 갚을 게 더 많아졌어.”

신유리는 노인이 말이 의미심장한 뜻 같기는 하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꾸 물어보기도 뭣해 그냥 들어 넘겼다.

세별이는 할아버지가 자신더러 자꾸 바리공주라고 불러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신유리는 자신이 뭔가 선한 일을 하여 오구 신인 바리공주의 덕으로 배를 타게 됐다는 뜻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언젠가 박 교수와 오구굿을 보러 갔던 일을 떠올렸다. 굿상에 절을 하기 전에 지폐 3장을 올리라는 박 교수의 말에 잔돈이 없어 5만 원 권 3장을 내놓았었다. 그것도 덕을 쌓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세별은 배에 앉아 노인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지금 14살이지만, 지지난 달에 생일이 지났으니 만으로 따지면 13살 좀 지났다. 그러니 14년 산 게 아니라 13년 두 달 정도 산 것이었다. 자신의 수명이 104살이라면 90살을 내 놓아도 다 쓴 게 아니라 1년 가까이 남았다. 그런데 노인이 남은 게 없다고 하니 이상했다. 계산을 잘 못한 게 아닌지, 노인을 붙들고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마와 동생이 있어 그만 두었다.

사실 굳이 왈가왈부 따져 물을 필요도 없었다. 살아보면 알게 될 테고, 어쩌면 죽을 날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것도 같았다. 어쨌든 열 달 정도라도 더 살게 된다면 기쁜 일이었다.

새별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를 한 달보다 더 알차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시한부 생명이다. 그런데 병에 걸려 남은 시간을 고통스럽게 사는 시한부는 아니다. 더욱이 17년이나 남았다면 잊고 살아도 될 세월 아닌가 하고, 아이답게 쿨한 생각을 하며 우울함을 떨쳐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별은 또 눈물이 주르르 나왔다.

“왜 그래?”

신유리가 그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냥.”

“그냥이 어디 있어. 왜 그래?”

“힘들어서 그래.”

세별은 그런 식으로 얼버무렸다.

“그래? 조금만 참자.”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나자 멀리 건너편 둔덕이 보였다. 그들이 바다로 보았을 정도로 강치고는 폭이 꽤나 길었다.

노인은 둔덕 아래 나루에 배를 댔다.

46

둔덕은 출발했던 쪽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모두 기다란 풀숲이 이어져있었다. 그런데 강폭이 길고, 아치형 다리처럼 둥글어 이쪽에서 저쪽 둔덕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다시 봐도 바다 같았다.

아이들 남매가 내리고 신유리가 내릴 차례가 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노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놀라 입을 벌렸다. 노인의 얼굴이 좀 전 보다도 훨씬 젊고 기운차 보였다. 그녀는 ‘또 무슨 조화가 일어 뭐에 홀렸나’ 하고 생각했다.

배에서 내려오니 치우는 벌써 둔덕 위로 올라가고 있었고 세별은 나루터에 쭈그리고 기운 없이 앉아 있었다.

“왜 그래. 멀미나니? “

신유리는 세별을 잡아 일으켰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녀는 그만 너무나 놀라 뒤로 나자빠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중학생 아이 세별이가 아닌 폭삭 늙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머리칼도 하얗게 새어있었다.

“벼, 별아? 너 세별이 맞아?”

“엄마”

세별이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아니야. 아니야. 세별이가 아니야.”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엄마, 나 맞아.”

“거짓말. 당신 세별이 아니잖아! 우리 세별이 어디 갔어?”

신유리가 울부짖으며 소리 질렀다.

“내 명으로 배 삯을 치렀어. 그래서 그래”

“뭐? 왜! 누구 맘대로!”

신유리가 화를 내며 악을 썼다.

“엄마랑 태양이 오래오래 살게 하고 싶었어.”

“누가 그렇게 하랬어, 이 바보야.”

신유리가 세별을 껴안고 몸부림치며 울었다.

“안 돼! 너 이렇게 죽으면 안 돼”

“걱정 마, 엄마, 나 당장 안 죽어. 명이 엄청 길데. 제가 태어나면서, 갖고 온 수명이, 104살이래. 13년 살았으니까 아직 1년이나 남았어.”

아이는 말하기도 힘든지 숨을 헐떡이며 간간히 설명을 이어갔다.

“바보야, 그게 아니야, 한국 나이는 뱃속에 들어있던 때부터 치는 거야. 네가 어마 뱃속에서 열 달을 있었으니 90년을 줘 버리면 네 수명이 다 된 거야. 아이고, 어떡하면 좋으니.”

“괜찮아. 엄마가 여태 키워줬잖아. 갚을 수 있어서 행복해.”

“너 알고 있었어? 입양…”

세별은 빙그레 웃었다.

“이놈의 노인네를 그냥…”

당장 쫓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물리고 싶었다. 아니 더치페이로 다시 계산해달라고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배는 이미 강 저만치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 배에서 노인이 했던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신유리는 속이 상했다. 자식이 시어머니보다도 더 늙은 할머니라니. 그녀는 아이를 안고 울었다. 아이도 따라 울고, 상황을 알게 된 태양이도 제 누나 꼴을 보고는 “누나 왜 이래.” 하고 따라 울었다.

“어서 가자, 엄마. 해가 지려고 해. 벌써 이틀짼데…”

세별이는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신유리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서둘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야 했다. 이승에 돌아가지도 못한 채 이 저승 땅에서 생을 마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별은 겨우 일어섰다. 서있을 기력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걸어갈지 걱정이었다.

“기운 없어 못 걸어 너, 엄마 등에 업혀.”

신유리는 아이를 들쳐 업었다. 아이는 힘들었던지 아무 저항 없이 업혔다.

등에 업으니 노인처럼 무게가 가뿐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옛날 친정 엄마를 업었던 때의 찡 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전, 잠깐 집에 와 계시는 동안 병원에 모시고 갈 일이 있었다. 집에서 주차장까지 친정엄마를 업고 가는데 그때도 이처럼 가벼웠다.

태양이가 제 양말을 벗어 누나 발에 덧 신겼다. 104세 노인으로 늙어버려 몸이 약해진 누나를 위해 발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어리지만 기특해 보여 신유리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업힌 새별이도 동생을 향한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태양이는 손바닥으로 제 엄마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는, 자신도 눈물을 훔쳤다.

47

신유리는 바리를 업고 둔덕을 넘어섰다. 섬이었던 건너편과는 달리 넓고 거대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평원의 한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바위덩어리 같은 산이 하늘을 뚫을 듯이 높이 우뚝 솟아있었다. 기암괴석으로만 이루어진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엄청난 거인이 바위 세 개를 나란히 세워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바위덩어리 그 자체였다.

“이걸 이름붙이라면 마고 바위라고 할 거 같아.”

신유리가 저 멀리 있는 바위산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역시 신화를 공부한 사람답게 신유리의 상상력은 우리의 마고할미, 그러니까 제주 설화의 설문대할망 같은 창세신이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그 자리에 돌멩이 세 개를 세워 놓았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렇다면 그곳이 혹시 마고신, 즉 마고 대성과 관계있는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바위산을 한참 보고 있으니 그 모양이 마치 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인공의 흔적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하긴 산이며 바다, 자연 그 자체가 실은 모두 창세신이 만든 신의 인공물 아닌가.

그녀는 세별이를 업고 태양이와 함께 바위산까지 걸어갔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막상 가다보니 거리가 걷기에 만만치 않았다.

전체적인 산의 형태는 둥글면서도 어찌 보면 네모진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각이 없이 모서리가 둥근 네모였다. 그리고 가운데 바위 앞에 단 같이 편편한 곳이 있고, 사방에도 각각 작은 단 같은 바위들이 둘러 있었다. 그 바위들 사이로는 세 겹으로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볼수록 정말 단순한 바위산은 아닌 누군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성 같았다. 그런데 성이 확실하다면, 그렇게 큰 산 같은 덩어리 바위를 옮겨놓을 수 있는 자는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만일 자연의 힘으로 그러한 성이 만들어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의 조화였다.

“마고의 성이다!”

그녀가 그렇게 속으로 외치는데, 세별이도 똑같이 “와, 마고 성이다!”하고 소리쳤다.

“우와!”

태양이도 고개를 쳐들고는 감탄을 뱉어냈다.

그들은 바위벽을 바라보았다. 성이라면 오를 수가 있어야하는데 어디를 봐도 온통 튀어나온 바위들뿐이었다. 하지만 어떡하든지 그 바위를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그들 모두 공통적으로 하고 있었다. 가르쳐주는 이 없어도 가다보면 스스로 길을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 듯싶었다.

그들을 산 아래의 단에 올라서 바위산의 주변과 둘레를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바위 둘레가 하도 커서 뒤쪽을 돌아가는 데만도 20여분이 걸렸다. 그런데 뒤 쪽으로 가니 바위벽에 뾰족뾰족한 수많은 작은 돌부리들이 마치 산을 오르기 위한 발판처럼 돌출되어있었다. 산 중턱 쯤에는 커다란 굴 같은 것이 마치 성 안을 들어서는 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뚫려있었다. 그리고 약간 편편해 보이는 바위산의 정상 꼭대기에는 세 개의 뾰족한 돌들이 마치 탑처럼 쌓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탑을 삼발이처럼 하여 커다란 접시같이 둥근 받침이 올려 있고, 그 위로 마치 태양을 띄워 올려놓은 것 같이 둥근 불덩어리가 허공에 띄워진 채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저 위가 제단이고, 저게 불의 알인 거 같아.”

“무슨 가운데 방인 가에 있다고 했잖아.”

태양이가 금소화의 말을 상기시켰다.
“맞아, 그랬지. 그럼 저건 마고대신의 알일 수 있어. 우리가 가져오려는 알은 저 안에 있는 방에 있을 수 있고,”

“근데 엄마, 저 바위 덩어리에 무슨 방이 있어”

“여기서 봐서는 모르지. 산을 올라가보면 집 같은 게 있을 수 있지. 굴이 있을 수 있고.”

신유리가 고개를 쳐들고 성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길 무슨 수로 올라가, 엄마. 우리가 바위를 탈 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래도 산이니까 길이 있겠지.”

“무슨 산이야, 그냥 바위 덩이잖아”

신유리는 바위산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오르는 길을 찾았다. 하지만 길이 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고, 바위는 너무 거의 급경사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오른다 해서 서서 걷기보다는 거의 기어야 할 지경이었다.

휴우-

신유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야 없지.”

태양이가 제 엄마를 독려했다.

“나 내려줘. 내가 기어서라도 갈게”

등에 업힌 세별이가 말했다.

“좋아, 어쨌든 올라가 보는 거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백소인지 마고신인지는 몰라도 보이지 않는 어떤 전능한 힘이 우릴 여기로 보낸 것 같아. 그렇다면 그 힘이 끝까지 도와주지 않겠니.”

그렇게 말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던 마음에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

꼭대기를 올려다보던 신유리는 이윽고 결심을 굳히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아자”를 외쳤다.

세별이가 제 수명을 다 내어주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며 아이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거였다.

“세별아 넌 여기 있어. 태양이랑 내가 올라갔다 올게”

“그건 내 소명이야. 날 업고 가.”

“뭐라고?”

신유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일은 내가 해야 돼.”

“아무나 하면 어때.”

“안 돼. 나를 업고 어서 가. 내가 내준 생명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내 말을 들어.”

신유리는 깜짝 놀라 굳은 표정으로 세별을 쳐다보았다. 착한 딸 노릇을 하던 중1의 어린학생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아이는 104세의 고집스런 노인이었다. 그 노인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꾹 다문 입은 결연한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순간 어쩌면 저 애가 신이 아닐까 싶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갑자기 아이가 두려워지면서 경외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신유리는 세별이 딸인 것도 잊고 얼떨결에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태양에게 메고 가라고, 자신은 세별이를 업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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