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그들은 바위산을 오르고 있었다. 겹겹이 급경사로 이루어진 바위산은 마치 신이 돌을 밀가루반죽처럼 빚어 눌러 옆으로 겹겹이 붙여나가면서 층층이 성의 형태를 만들어간 걸작 품 같아, 겉으로 볼 때야 감탄할 만큼 장엄하고 멋있었다.

하지만, 막상 올라서니 산은 어마어마한 괴물 덩어리였다. 감히 그곳을 오르려는 자가 있다면 누구도 가만 놔두지 않고 낭떠러지로 밀어버리겠다는 괴물의 경고가 느껴지는 듯 했다.

“어떻게 저길 다 오르지”

신유리는 몇 걸음도 못 올라가 벌써 지쳐버리고 말았다.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온통절벽이라 발이라도 자칫 잘못디디면 그대로 추락이었다. 그녀는 기차에 다친 손가락들로 바위를 잡으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는데, 딸 세별이 까지 업고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들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려 진땀이 났다. 게다가, 업힌 딸애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로 목을 꼭 조이고 있어 숨까지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목을 죄고 있는 손을 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자칫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도저히 못가겠다.”

그녀는 뾰족한 바위 한 끝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발을 치켜들어 들여다보았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발바닥이며 발가락이 온통 까지고 짓물러져 픽 범벅이 되어 있었다.

태양이는 남자 아이라 그런지, 아니면 혼령이라 그런지, 여하튼 훌쩍훌쩍 잘 올라갔다. 신유리가 주저앉으면, 앞서 가다가도 아래로 쭈르르 내려와서 일으켜주고, 바위가 높아 발을 못 올리면 뒤에서 발이나 엉덩이를 받쳐 밀어 제 엄마가 잘 오를 수 있도록 올려 주었다. 또 먼저 위에 올라서면 손을 내밀어 제 엄마 손목을 잡아 끌어올려 주었다.

이상했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등에 업힌 세별이의 무게가 가 점점 느껴지지 않았다.

“세별아!”

신유리는 가끔 한 번씩, 딸애를 떨어뜨린 줄 알고 흠칫 놀라 한 번씩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때마다 여전히 아이는 등에 얌전히 업혀있었다.

어떤 때는 숨소리도 나지 않고 하도 조용하여 죽은 것이 아닐까 하고 섬뜩하여 아이를 불러보기도 했다.

“세별아?”

“누나 자”

태양이가 그러고 알려주면 신유리는 더더욱 불안했다. 나이를 배 삯으로 내놓음으로서 아이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노화가 아이의 생명을 시시각각 갈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기암괴석이 겹겹이 쌓인 바위산은 전체적으로 보면 위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성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 때문에 층층이 겹쳐지며 바위들이 하나씩 끝나는 곳마다 평평하게 층계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 죽을 것 같아!”

신유리가 엎어지며 급기야 비명을 질러댔다.

“다 왔어, 힘내 엄마. 조금만 더 가면 돼”

아이는 제 아빠랑 산엘 다녀본 적이 있어, 지친 등산객에게 제법 거짓말로 기운을 북돋울 줄도 알았다.

“조금은 무슨, 아직 삼분의 일도 못 왔는데.”

신유리는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그러다 다시 또 오르고 하며 반 쯤 올랐을 무렵, 그녀는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엄마!”

아래쪽 바위 위로 굴러 떨어지는 엄마를 보고 놀란 태양이, 허둥거리며 아래로 뛰어 내려왔다.

“괜찮아 엄마? 안 다쳤어?”

그녀는 몸을 움직여보았다. 팔이랑 다리가 아팠지만 다행이 어디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움직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딸은 기적처럼 손을 놓지 않고 마치 등에 멘 가방처럼 그녀 등에 찰싹 붙어있었다.

“좀 내려 봐 안 다쳤어?”

딸의 팔꿈치에 심하게 상처가 났고, 머리칼에서도 피가 묻어났다. 그러나 위험할 정도로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신유리는 다시 아이를 업었다. 아니, 세별이 스스로 매달렸다고 해야 옳았다. 그들은 다시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그녀의 몸은 모두 여기저기 긁혀 온 몸 어느 한 곳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이젠 해까지 저물어 어둠이 내릴 것 같아 더 오르기도 무리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더니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센 빗줄기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와 도저히 더는 앞으로 못나갈 것 같았다. 바닥도 미끄럽고, 날이 추워지며 몸도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깎아지른 산 중턱에 매달려 비를 맞으며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날까지 컴컴해져 진퇴양난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조금만 더 힘내고 올라가 보자”

신유리가 태양이를 재촉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긴, 아직도 멀었는데.”

그때 우르릉 꽝! 학고 번개가 번쩍 거렸다.

“무서워, 우리 번개 맞아 죽으면 어떡해”

태양이 몸을 덜덜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아이의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아이는 아직도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오늘은 도와주질 않네. 날씨까지 이럴까?”

신유리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았다. 그때 머리 위 가까이로 어슴푸레 동굴 입구가 보였다.

“태양아 저기 좀 봐, 굴 맞지.”

“그런 거 같아”

“올라가보자. 어두워지면 위험하니까 굴이면 거기 들어가서 쉬자.”

신유리가 말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치우와 신유리는 기운을 내어 걸음을, 아니 기어가기를 재촉했다. 동굴 입구까지 올라왔을 때는 벌써 캄캄해져있었다. 그 앞에 다다랐을 때도 어두워서 동굴이 맞나 더듬어봐야 했다. 하마터면 그들은 동굴 입구를 앞에 두고도 찾지도 못할 뻔 했다.

동굴 안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컴컴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원래 컴컴한 것인지는 아침이 밝아봐야 알 것 같았다.

“엄마, 어쩐지 으스스 해. 저 안에 호랑이나 곰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태양은 떨리는 목소리로 불안함을 드러냈다.

“설마”

“있을 수도 있잖아.”

“없길 바라야지. 그래도 혹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날이 밝을 때 까진 일단 입구에 가만히 있자. 비바람이라도 피하니까 그래도 살 것 같잖아.”

“세별야, 넌 괜찮아?”

“괜찮아.”

어두워서 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으니, 신유리는 그 아이가 늙었다는 사실이 이제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다. 그녀는 양 팔에 딸과 아들을 하나씩 안고 동굴 입구의 안 쪽 벽에 기댔다. 아늑했다. 두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녀도 스르르 잠이 쏟아졌다. 일단 눈꺼풀이 내려오자 추위로 몸을 떨면서도 눈은 떠지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동굴 입구에서 밝은 빛이 안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막힌 굴이 아니라 안으로 좁은 길이 이어져 있는 터널같이 생긴 굴이었다.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 보자.”

“그러다 곰이나 호랑이 같은 게 나오면 어떡해”

태양이가 또 그 소리를 했다.

“그런 거 안 나오니까, 그냥 가, 아니 오늘 사흘째잖아. 소지 올려야지.”

모처럼 세별이가 입을 열었다. 신유리는 바리의 늙은 모습을 쳐다보며, 그 아이가 104세의 노인이 된 것을 다시 상기해냈다. 순간 가슴이 울컥하며 서글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은 초를 켜고 소지를 태우며 각자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길은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이어져있었다. 빛이 없어 온통 컴컴했지만 신기하게 앞을 전혀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길을 따라 빙글빙글 계속 들어가자 꽤 넓은 둥그런 평지가 나왔다. 그 가운데로 우물 같은 것이 보였다. 산에 우물이 있는 그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떠나왔던 그 동굴과 구조나 안의 모습들이 상당히 비슷했다.

“이게 무슨 조화람”

신유리가 중얼거렸다.

49

우물 안이 환했다. 마치 아래서 빛이라도 나오는 것처럼 맑은 물이 반짝이며 출렁출렁 고여 있었다.

“와, 신기하다. 이렇게 높은 산에 어떻게 우물이 있어?”

“그러게”

그들은 고개를 우물 아래로 빼고 우물 안을 신기한 듯이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야?”

태양이 우물 옆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작은 버킷 같았는데 줄이 감아져있었다.

“두레박이네, 이리 줘봐.”

신유리는 줄을 풀어 우물에 던져 넣고 물을 퍼 올렸다.

“너희들 좀 목 좀 축여”

그녀는 애들에게 한 모금 씩 마신게 한 뒤 자신도 입을 축였다. 오랜 기갈로 지치고 목이 말라서인지 물이 달착지근한 것이 입에 착 붙었다.

그녀는 나머지 물을 태양에게 손에 부어달라고 하여 세수를 한 후, 발에도 부었다. 상처로 부어올라 화끈거렸던 발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야아! 발이 시원하다. 너도 퍼줄게 발에다 붜 봐”

그녀가 남은 물을 아들 발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다시 물을 길어 올리는데 태양이 소리쳤다.

“우와! 엄마, 발이 말끔해졌어.”

“뭐?”

“상처가 하나도 없어졌다고, 이거 봐.”

그녀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니 정말 상처가 하나도 없이 깨끗해졌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발이 다 까져 상처랑 피딱지로 엉망진창인 발이었다. 게다가 손도 깨끗했다.

“얘 이거 치유의 기적수인 보다.”

“기적수가 뭐야”

“기적의 물이라고”

“애, 세별이 너 이물 좀 마셔봐. 다시 젊어질지도 몰라. 이게 정화수야, 정화수!”

신유리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정화수? 시골에서 할머니가 장독대에 물 떠놓고 비는 거?”

“그래, 할머니 하시는 거 봤구나?”

“아니, 학교에서 배웠거든”

신유리는 한 번 더 물을 퍼 올려. 세별에게 마시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를 세별의 상처에다 부었다. 신기하게 세별의 상처도 깨끗이 나았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젊어지지는 않았다.

“이게 정화수 틀림없어. 정화수는 정성을 들이거나 약을 달이는 데 쓰여. 동의보감에 보면 물의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 그릇에 담아서 술이나 식초에 담가 두면 변하지도 않는대. 목마름이나 입 냄새도 없애고, 얼굴빛도 좋아지게 하며, 눈에 생긴 군살이랑 눈자위에 막이 생기는 병을 없앤데. 그것 말고도 술 마시고 설사할 때도 좋고, 차를 넣고 달여서 마시거나 머리와 눈을 씻으면………”

“그만 좀 해, 엄마 동의보감 읽어보지도 않았잖아.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탸양이가 짜증을 냈다.

“인터넷에서 봤어.”

“크!”

“어쨌든 이 물은 정화수도 그냥 정화수가 아닌 치유의 효능이 있는 물 같아. 통이 있으면 좀 담아갈 텐데.”

“또 시작이야, 엄마. 다이아몬드 잊었어?”

“이건 욕심이 아니야, 가져가서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어서 그러지”

“어쨌든”

“가져갈 수 없는 게 진짜 아쉽다. 너희들 이 물 배터지게 실컷 마셔. 온 김에 우리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고 그러자. 언제 이런 물을 또 만나냐.”

신유리는 두레박의 물을 계속 마셔댔다.

“저봐, 욕심 부리지 말랬잖아.”

세별이 물을 마시고 나니 좀 기운이 드는지 엄마를 잡아끌며 재촉했다.

“엄마 오늘밤 사흘 째 아냐?”

“잠깐만, 좀만 더 퍼서 머리 좀 감을까.”

“미쳤어? 감기 걸리려고”

“치유의 물이잖아. 감기 걸리겠어?”

“또 무슨 끔찍한 일이 생기게 하지 말고 그만 좀 해”

“알았다 알았어.”신유리는 치우와 태양이에게 억지로 끌려 우물을 벗어났다. 하지만 물을 퍼오지 못한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물병이라도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담아가는데, 저 물을 가져가면 아빠도 일어날 거 아냐.”

“그럼 조금만 담아 가던가”

“어디에.”

태양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엄마 가방에 혹시 비닐봉지 같은 거 없어?”

“아!”

신유리는 가방을 뒤졌다. 마침 구겨진 비닐 포장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보니 다행히 세지 않았다.

신유리는 물을 퍼서 비닐봉지에 담아 묶었다.

아이들은 어쩐지 불안했다. 욕심 부리다가 지난번 철길에서처럼 또 무슨 사건이라도 터질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제 엄마를 향해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 별 탈 없이 물 담은 봉지를 들고 그녀가 돌아섰다.

“얼마 담지도 못 했어. 묶고 나니까 요렇게 작아지네.”

“그녀가 봉지의 물을 쳐들고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에게, 그것 같고 뭐해.”

“근데 그걸 가지고 어떻게 저길 올라가.”

“가방에 넣지”

그러는 그녀는 지난번 다이이아몬드를 주울 때와 똑 같이 욕심과 아쉬움이교차하는 그런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고 있었다.

“엄마! 그러다 터지면 어떡하려고.”

“금소화가 준 소지봉투 도 들었는데, 젖어버리면 어쩌라고.”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괜찮아, 가방을 누르지만 않으면 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소지는 꺼내서 파커 안 주머니에 넣자.”

“얘들아 저리로 죽 가보자, 계속 위쪽으로 길이 나있는 거 같아.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면 이길로 가는 게 훨씬 편하잖아.”

그랬다. 둥근 우물터의 뒤쪽으로 계속 올라가는 좁은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통로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길은 나선형으로 둥글게 계속 이어졌다.

세별이는 쉬고 나니 이젠 좀 기운이 난다며 걷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걸음이 너무 느렸다. 신유리는 시간이 너무 지체 될 것 같아 업으려고 했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완강히 걷겠다고 버텼다.

달팽이 굴처럼 길은 돌고 또 돌아도 계속 끝이 나질 않았다. 자신들이 지금 어딜 가고 있는 것인지, 산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게 맞긴 한지, 알 길이 없었다.

“뭔지 모르겠네. 이렇게 굴 안에서 계속 돌고 있어도 되나.”

신유리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도로 나가야 되는 거 아냐. 엄마?”

태양이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도로 왔던 대로 나가기도 그렇다. 계속 가보자”

“그러다 막힌 길이면?”

“그러게, 그럼 문젠데.”

“출구만 나오면 다행인데, 그럼 어쨌든 산 위로 올라간 거잖아.”

“막혔으면 어떡할 건데 엄마?”

“어떡하긴, 여기가 아닌가벼, 하고 다시 내려와야지 별 수 있어? 치우 네가 바위를 뚫을래?”

“헐!”

그들 모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감이 각자를 내면으로 침잠시켜버렸다. 그들의 침묵 속에서, 헉! 헉! 하는 가쁜 소리만이 굴 안을 울렸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막힌 길이 아닌, 밖과 연결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끝도 없이 오르고 나서 되돌아 다시 내려와야 한다면 황당하다 못해 너무 끔찍한 것이다. 더욱이 굴 밖은 험난하고 아슬아슬한 바위산이 그 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 끔찍했다.

그렇게 네 시간 정도 걸었을 때 어쩐지 굴이 조금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한 바퀴를 더 돌자 밖에서 환한 빛이 비쳐 들어왔다.

“와 출구다!”

먼저 태양이가 빛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야, 빛이네.”

“오 부처님, 하느님, 마고대신님, 천지신명이여. 감사합니다.”

신유리는 너무 기뻐 두 손으로 모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새 태양은 그들 시야에서 벗어나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보이 않았다.

“엄마! 거의 꼭대기야”

금세 다시 입구에 나타난 태양이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신유리는 흥분해서 굴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엄마, 조심해. 웅덩이 있어”

그 소리와 동시에 그녀는 미처 살필 사이도 없이 커다란 웅덩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50

웅덩이 쪽에서 자신이 나온 굴을 올려다보니 마치 강둑으로 난 하수구 구멍 같았다.

신유리는 웅덩이를 기어 올라갔다. 그곳부터는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 구릉이 이어져 있었다. 얼마쯤 올라가자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산의 정상이었다. 굉장히 넓고 평평했다. 위로 푸른 하늘만 보였고, 아래로는 아득하게 산 아래 펼쳐져있는 절경이 보였다. 저 멀리로 자신이 배를 타고 건너온 엄청나게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쪽에는 숲이 빽빽한 섬이 있었고 그 주변을 빙 두르며 마치 또 다른 강이 흐르고 있었다. 섬 위로는 마치 놀이공원처럼 철길이 지나고 있었는데 그 한쪽이 땅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특이했다.

바위산 주변에는 셋 강이 흐르고 있어 산은 마치 요새 같았다. 다른 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빽빽한 숲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이 자신들이 지나온 길이라고 보기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았다. 그 정도의 길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며 걸어왔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바리와 치우도 그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을 거라며, 아마 다른 곳일지 모른 다며 의심스러워했다.

그들이 올라와 있는 정상은 정 사각형의 평편한 흙바닥이었다. 가운데로 높다란 바위 봉우리 세 개가 똑같은 높이로 둥글게 둘러서서 위로 솟아 있었다. 언뜻 보면 거대한 무슨 석상 같았다. 그 위로는 태양이 새빨간 빛을 뿜어내며 떠있었는데, 마치 그 모양이 석상들이 머리위로 태양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사람이 태양을 이고 있는 모양이야.”

“어제 산 아래서 본 붉은 불덩이가 저 거였나 봐”

신유리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바위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그런 거 같기도 했다. 어떻게 보니 세 봉우리는 앞 쪽은 할머니 뒤 쪽은 할아버지 같기도 했다.

“마고 상인가? 가운데가 마고, 소희 궁희”

“미륵 3불같아. 체험학습 갔다가 미륵이 바위에 새겨진 걸 봤는데 저렇게 셋이었어.”

세별이가 말했다.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신유리가 손벽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엄마,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러시는데.”

“알았어, 그러시는데, 천국에 하느님아버지 오른편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왼 편에 마리아가 있데. 여기가 그런 천국 아닐까.”

“아!”

신유리는 문득 무당 박선화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그녀는 우리가 신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고, 신이라고 말하고 믿고 보고 있는 것들이 실은 신의 옷자락일 뿐이라고 했었다.

“예수님이든, 미륵이든, 마고든 각자 알아서 생각하고, 우리 저기다 소원 빌자”

“이렇게 세상 만물을 신으로 보는 것을 애니미즘이라고 한대.”

태양이는 학습만화책에서 본 기억을 떠올리며 아는 척을 했다.

셋은 합장을 하고 나름 속으로 소망을 빌었다.

“뭐 빌었니?”

“비밀”

“나도 비밀.”

“가족끼리 정말 치사하다. 그럼 엄마도 비밀이야”

하지만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신이 기원한 것을 입으로 발설했다.

“우리 모두 무사히 알을 갖고 가서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우리 세별이도 중학생인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어.”

“비밀이라더니.”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제 엄마를 놀려댔다.

그때 새별이가 바닥을 보며 소리쳤다.

“북두칠성이야!”

그런데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바닥에 커다랗게 부두칠성 모양의 7개의 움푹 파인 점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국자같이 생긴 가운데 안으로 들어와 있는 거였다. 그 점들 속에는 빗물 같은 물이 고여 있었다.

“우리가 결국은 북두칠성을 찾아온 거네.”

“그러게 이게 우주목이라면, 여기서 시작해서 여기로 갔다가, 여기 빼 먹고 바로 이리로 갔다가, 다시 이리로 해서…….”

신유리는 발을 구멍에 집어넣고 밟아대며 우주목을 지나온 경로를 떠들어댔다. 그런데 마지막 구멍에 발을 집어넣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더니 하늘에 떠있는 해에서 석상들 위로 세 줄기의 빛이 쏘아져 내렸다. 그리고는 세 개의 석상이 각자 빙글빙글 돌며, 동시에 셋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었다.

“헐~”

“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 동안 석상이 멈추었다. 이어 석상이 쿵! 소리는 내며 바깥쪽으로 넘어지더니 순간 바닥이 둥글게 열리는 것이었다. 커다란 그릇 모양의 원형 방이 바닥 아래에 나타났다. 석상은 기둥이 되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세 개의 계간이 있었다.

“저기를 내려가야 될 거 같아.”

셋은 각각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계단 아래쪽으로 세 개의 문이 보였다.

“세 개의 방인가?”

금소화의 말을 떠올린 신유리는 첫 번째 방을 찾았다. 그러나 원형 방에서 어느 것이 첫 번째고 어느 것이 세 번째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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