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한 개의 문을 열었다. 방안은 안개가 자욱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안개가 걷히고 푸른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봄날처럼 새와 벌 나비가 날아다니고 향긋한 향이 공기 중으로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나무 위에 공작 같은 새가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새들이 신유리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크게 깍_하고 울더니 커다란 날개와 꼬리를 펼지고는 퍼덕이더니 하늘을 날아갔다.

“공작인가?”

“봉황이다. 전설의 새”

신유리가 속삭였다.

“여기 너무 좋아, 천국 같아 엄마”

새별이가 소곤 거렸다.

바로 그때 태양이가 새가 앉았던 자리에서 알을 발견했다. 세 개의 알이었다.

“알이야.”

“가져가자”

알이라는 말에 신유리는 불에 타는 알이란 사실을 잊어버린 채 하나를 집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크게 세 번 치더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만치서 한 무리의 군사들이 칼과 화살로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저승사자, 아니 저승의 군사처럼 검은색 갑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 간 큰 인간이 감히 여길 들어 왔다는 거냐. 샅샅이 뒤져라.”

“잘 봐라. 저승으로 오다 도망간 아이도 같이 있다.”

앞에 선 대장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소리쳤다. 그들 앞에는 실제와 똑 같은 태양이가 모습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빨리 나가, 우릴 잡으러 온 것 같아”

신유리는 알을 바닥에 놓고 아이들을 잡아끌었다.

“싫어. 여기서 살래”

태양이가 나가지 않겠다며 엄마의 팔을 뿌리쳤다.

신유리는 죽을힘을 다해 양쪽으로 아이들 팔을 잡아끌고 왔던 쪽으로 달아났다.

“저기다, 쫓아라.

“거기 서라!”

뒤에서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날아왔다. 돌아보니 그물망이 바로 등위에 떨어져 있었다. 신유리는 세별이와 태양이를 잡아끌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달렸다. 겨우 문까지 왔을 때 화살 하나가 그녀의 어깻죽지에 날아와 꽂혔다. 그녀는 쓰러지듯이 비틀거리며 겨우 문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어깨가 너무 아파”

태양이가 화살을 뽑았다. 그러자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어떡해 엄마, 약도 없고……피 닦을 휴지도 없네.”

태양이가 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어? 이순신이 주머니에 있었네.”

아이는 주머니에서 이순신을 꺼내 제 누나를 향해 쳐들었다.

“진짜 귀엽다. 줘봐.”

세별이가 동생의 손에서 이순신을 넘겨받아 들여다보고 있는데 신유리가 세별을 향해 말했다.

“내 가방 봐봐. 휴지랑 물티슈 있을 거야.”

세별이는 이순신을 제 주머니에 넣고 엄마의 가방을 열었다.

“맞다. 아까 그 물!”

아이는 휴지 대신 가방에서 물을 꺼내들었다. 이어 봉지를 끄르고는 손으로 물을 떠서 엄마의 어깨에 축였다. 몇 분이 흐르자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하면서 통증도 사라졌다. “세 번째 문이 뭔지 알아야 말이지.”

“어쨌든, 아까 그건 아닌 것 같고, 이제 둘 중 하나네.”

그들은 또 하나의 방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일단 나 혼자 들어가 볼게, 여기 있어.”

신유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도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어디선가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철썩 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얼마쯤 나아가자 안개가 걷혔다. 그들이 서있는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바다 건너편에는 바위 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배가 한척 모래사장에 얹혀있었다.

“나룻배네”

태양이가 덜렁 올라탔다.

“신유리와 세별이도 올라탔다.”

“이거 타고 저 바다로 가고 싶다.”

신유리가 정말 그걸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별 생각 없이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말을 하자마자 파도가 크게 치며 밀려와 배를 툭 치더니 바람이 그들을 밀고 갔다. 순식간에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를 떠나 바위섬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바위섬에 내렸다.

“알이다!”

이번에도 태양이가 바위 섬 등성이에서 움푹 파인 제단 같은 곳에서 알을 발견했다. 조약돌 같이 생긴 세 개의 알은 희한하게 모두 발갛게 불에 달구어져있었다.

“비단 천 덮으랬어. 그럼 꺼진다고.”

“엄마, 이거 아닌 거 같은데.”

“왜?”

“몰라, 그냥…… 아닌 거 같아”

“맞아. 이거야. 불알이잖아. 세 개 맞고”

그녀가 천을 꺼내 덮자 화르륵 불이 붙어버렸다.

“뭐야! 뭐야, 뭐야.”

신유리는 당황해서 천을 발로 밞고 물에 적셔 불을 껐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함성이 들리고 바다 한가운데서 화살이 마구 날아왔다. 돌아보니 수많은 배들이 나타나 그들을 에워쌌다. 순식간에 그들은 포위당한 꼴이었다.

그들은 화살을 피하며 배가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배에 올라타려는 순간 파도가 치며 배가 휙 밀려가버렸다.

“누나 아까 그 이순신 어쨌어?”

“주머니”

세별이는 피규어 이순신을 꺼내 “도와줘요 이순신”하고 외쳤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그것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칼을 찬 이순신 인형일 뿐이었다.

“이리 줘봐. 내가 해 볼게”

화살이 빗발처럼 계속 날아왔다.

세 사람은 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빨리 해봐”

신유리는 피규어를 태양이에게 주었다.

“도와 줘요. 이순신 장군”

태양이는 피규어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그들이 탄 나룻배가 갑자기 커다란 거북선이 되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혼령이었기 때문에 인형을 가지고 잠깐이나마 죽은 혼령을 속여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겁먹을 거 없다. 용감히 맞서라”

부하 군사들이 이순신의 명령에 따라 배를 이리저리 돌리며 화살을 막아냈다. 신유리와 아이들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그만 날아오는 화살에 배를 맞았다. 순간 그것은 피규어로 변하고, 배도 밀려가버린 줄 알았던 원래의 작은 나룻배로 변해있었다.

“어쩌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들을 에워쌌던 배들은 모두 달아나고 하나도 없었다.

“다시 나타날 거 같아. 빨리 여길 뜨자”

다행히 아까와는 반대로 바람이 불어 배는 그들이 떠나왔던 해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해변에 배를 대고는 서둘러 문으로 들어왔다.

52

“이제 마지막 문이야.”

정신을 수습하고 난 신유리는 애들과 함께 마지막 문을 열었다. 그곳은 깨끗하고 커다란 광장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안 쪽 가운데에 커다란 단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안쪽에 마치 남근처럼 생긴 높다란 세 개의 기둥이 있었다. 그 기둥 아래로 둥근 알 들이 두 개씩 놓여 있어 마치 남성의 심벌 같았다. 그런데 위로 마치 태양이 뜬 것처럼 허공에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알 하나가 떠있었다. 두 마리의 봉황이 그것들을 지키듯이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는 양 옆을 감싸듯 하며 허공에 떠 있었다.

“저게 불의 알 같아!”

신유리가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외쳤다.

“근데 저거 공작?”

“공작이 아니고 봉황이야”

“아 맞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았는데, 청와대 그림하고 똑 같아. 저 알이 무궁화라고 치면 완전 똑같잖아.”

태양이가 제법 아는 채를 했다.

“그러네.”

“근데 누나가 새도 아니고 저위를 어떻게 올라가서 저걸 집어오지? 게다가 저렇게 지키고 있는데”

그들은 일단 방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태양이 그만 순식간에 뭔가에 부딪혀 뒤로 꽝 넘어졌다.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 같은 것이 그들을 가로 막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기운이 그들을 엄청 세게 밀쳐 넘어뜨렸다. 신유리도 시도해보다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이번엔 세별이가 나서자 신유리가 말렸다.

“얘 너는 몸도 부실한데 넘어지면 큰일 나.”

하지만 세별은 말을 듣지 않고 다가섰다. 그러자 아이의 이마에 있는 세 개의 점에서 갑자기 햇빛 같은 눈부신 빛이 발산됐다. 그리고 안쪽에서 마치 환풍기 바람이 빨아들이듯 세별을 안으로 훅- 끌어들였다. 세별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고는 붕 떠서는 종잇장이 빨려 들어가듯이 안으로 빨려갔다.

“이상하다. 들어가면 혼령인 네가 들어가야 될 거 같은 데.”

그들은 들어가지는 못하는 대신 밖에서 안쪽에 있는 세별이를 지켜보았다.

“근데 엄마, 불이 아니라 빛인데.”

“빛이라도 뜨거울 수 있지.”

“누나가 못 가져오거나 못나오면 어떡해. 그럼 우리 그냥 가?”

“그냥 이대로 가면 넌 영원히 못 살아나.”

안을 들여다보니 세별이는 석상처럼 그저 서있기만 했다.

“세별아! 빨리 어떻게 해봐.”

신유리가 밖에서 소리쳤다.

“누나, 안 되면 그냥 나와. 시간 없어.”

태양이도 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세별이는 듣고 나 있나 싶을 정도로 요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여기서 마냥 대책도 없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 어서 돌아가야 돼. 사흘을 넘기면 아빠도 죽게 될 것이고, 너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어떡하지.”

그녀는 아들을 향해 걱정을 쏟아냈다.

세별이는 여전히 위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딱딱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뒤에서 태양이가 돌멩이를 들고 아래에 있는 사다리를 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저기 있는 새 들으라고 부르는 거야”

신유리는 쭈그리고 앉았던 바닥에서 일어섰다. 정말 뾰족한 절벽 바위벽에 커다란 검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새는 커다란 날개를 펼치더니 퍼덕거리며 그들이 있는 쪽을 향해 날아왔다.

깍_ 까악_

요란한 소리로 울며 새는 그들의 머리 위를 몇 번이나 빙빙 돌며 선회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쳐들고 시선으로 새를 따라가며 소리가 나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알겠다. 삼족오야.”

태양이가 생각난 듯이 소리쳤다.

“안녕?”

“안녕.” 새가 사람처럼 대답을 했다.

“우와!” 태양이 뿐만 아니라 신유리도 놀라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저 안에 누나가 있어. 누나를 저 위에 올려주면 좋은데 들어갈 수가 없어”

새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런데 방 안을 들여다보니 새가 세별이 있는 곳에 들어가 있었다.

“와!”

새는 세별이를 태우고 위로 날아올랐다. 세별이는 쟁반 위로 내려 왔다. 그런데 세별이가 알을 집으려고 보니 알이 굉장히 뜨거웠다. 하늘의 태양에서 뿜어내는 불의 열기가 알을 향해 내리 쬐면서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것이다. 세별이는 비단을 알에 덮었다. 그러자 알이 조금씩 식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자 드디어 알을 집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알을 윗도리 속에 넣어 가슴에 꼭 품고 다시 새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하이고 참!”

“빨리 이걸 감춰”

“태양은 알을 파커 안에 넣고 손으로 꼭 품었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천둥 벼락이 치더니 지진이라도 난 듯이 산이 이리저리 마구 흔들거렸다. 그 바람에 세 개의 사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우릴 저 위로 올려 줘!”

태양이가 하늘에 떠있는 새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새는 날개를 커다랗게 펼쳐들었다. 그리고 날개를 몇 번 펄럭였다. 신기하게도 날개를 한 번씩 펄럭일 때 마다 쑥쑥 커지더니 마치 프테라노돈처럼 거대한 새가 되었다.

그들은 모두 새의 등과 양쪽 날개에 타고서 바위산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산이 계속 흔들리는 바람에 무서워서 하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새는 그들을 바위 산 꼭대기에 내려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알을 집어 와서 다행이야. 줘봐”

신유리의 말에 세별이는 옷을 들치고 안에 품고 있던 알을 꺼냈다.

“뭐 이래. 이거 불의 알 맞는지 모르겠네.”

알은 시커멓게 되어있었다. 검은 돌 같았다.

“타다가 식어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닌 거 같아. 아까 거기 다시 가보자.”

세별이가 뭔가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또? 거길 또 가?”

“가봐.”

세별이 하도 사정하여 그들은 바위를 내려와 그들이 있던 건너편으로 힘들게 다시 갔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던 그들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이 할 말을 잊은 채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안에는 원래 그대로 아무런 변화가 없이 붉은 알이 빛을 뿜으며 떠 있었던 것이다. 봉황도 역시 그대로였다.

“가자. 저거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신의 알이야”

신유리가 아이들을 이끌었다.

“그럼 우리 여태 헛지랄 한 거네.” 태양이 투덜거렸다.

“그래도 일단 가져는 가자. 그 여자한테 보여는 줘야 할 거 아냐. 이걸 가져오랬으니까 뭔가 소용이 있겠지.” 그들은 자리를 떠났다.

53

“근데 우리 소지 두 번밖에 안올리지 않았어.”

얼마쯤 가다가 갑자기 세별이가 소지 얘기를 꺼냈다. “뭐? 세 개 다 안 썼어?”

“두 개만 썼잖아.”

“그럼 맞지. 아침마다 해 뜰 때 쓰랬잖아. 사흘이면…….”

“어쨌든 세 개 받았잖아. 우리가 떠나 올 때 하나 썼어야 했어.”

“그래서 자꾸 이렇게 힘들어지는 건가?”

신 유리는 가방을 뒤졌다. 소지 한 개가 남아있었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얼른 태우자”

신 유리는 소지봉투를 꺼내 세별에게 주었다. 흰 봉투에서 세별이 소지를 조심스럽게 껴내 펼쳤다. 하얀 한지에 붓글씨로 쓴, 뭔지 모를 글들이 한자로 휘갈겨 쓰여 있었다. 읽을 줄은 몰랐지만 어쩐지 글씨체가 꾀 멋져보였다.

“엄마 이거 뭐라 쓴 거야?”

“글쎄…….”

한참 들여다보고만 있는 그녀를 향해 태양이,

“엄마도 못 읽지?” 하며 소곤거리며 웃었다.

“너무 날려 써가지고……. “

“어쨌든 못 읽잖아.”

“부정 타니까 조용히 해”

신 유리는 성냥을 그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불이 붙지 않았다. 물 봉지 때문에 약간 젖어있던 거였다.

“케이크를 사도 하나에 성냥을 두 개는 주는데 어떻게 소지 세 개에 성냥을 딱 세 개만 주냐. 그나저나 어떻게 불을 붙인담?”

“불의 알에서 붙여.”

“불의 알? 네가 갖고 있는 그 알?”

“저거 말이야.” 태양이가 해를 가리켰다.

“저 해? 장난해? 저걸로 불을 붙이자는 건 아니겠지?”

“저 태양에서 불덩어리가 툭! 하고 떨어질 거야. 이상한 일이 생긴 게 한 두 번이 아니잖아”

“그러면야 너무 좋지”

세별은 혹시나 하고 해를 향해 팔을 뻗쳐 두 손으로 소지를 들고 서 있었다. 몸은 늙고 머리도 허옇게 되어 할머니가 다 되었지만, 하얀 목 폴로셔츠에 검은 파카, 청바지를 입고서 흰 소지를 들고 선 아이의 모습은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어쩐지 경건해 보였다.

하지만 거의 30분을 그렇게 서있어도 불이 붙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태양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소리쳤다.

“아, 생각났어. 내가 불을 붙여볼게”

“어떻게?”

“물봉지 있잖아. 돋보기로 이용하는 거야”

아이는 물봉지를 쳐들어 소지를 향해 빛을 모았다.

“이렇게 돋보기처럼 빛을 모으면 돼”

정말이지 물 봉지는 훌륭한 돋보기 노릇을 했다. 좀 지나니 빛이 모아진 곳에서 연기 한 가닥이 가느다랗게 솔솔 올라왔다.

“와!”

얼마 쯤 그렇게 연기만 피워 올리는 것 같더니 점점 연기가 커지고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도 불은 일지 않았다.

“불은 안 붙고 구멍만 나니?”

“좀 기다려 봐. 엄만, 왜 그렇게 급해. 이것도 빛이 강해서 엄청 빨리 된 거야.”

아이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보란 듯이 불이 화르륵 일었다. 순식간에 불은 종이들에 붙어 번져갔다. 세별이가 그 소지를 받아들고 하늘을 향해 훨훨 날렸다. 신유리는 그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며 기도를 했다.

“아무쪼록 저희를 잘 보살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시고…….”

소지는 순식간에 재가 되어 하늘 높이 훨훨 날아올랐다.

“태양이 이승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고, 우리 세별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시고, 애들 아빠 일어나게 하시고, 온 세상 전쟁 없이 두루두루 평안하게 하옵시고, 가난하여 병으로 죽어가거나 배고파 굶주리는 이 없이 하옵시며……..”

무슨 신에게 비는 지는 신유리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딱히 구체적인 어떤 신에게 빈다기보다도, 그냥 소지가 날아 올라가는 하늘을 향해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기원하는 것이었다.

“수고했어. 하나도 안 떨어지고 재가 훨훨 잘 올라가는 거 보니까 잘 될 거 같다.”

마지막 재까지 다 올라가는 것을 본 신유라는 세별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 저기!”

신유리가 불을 피웠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태양이 하늘을 가르쳤다.

“저게 뭐야?”

분명 흩어져 하늘을 날던 재들이 하늘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하늘 날아다니더니 그것들이 눈처럼 하얀 덩어리가 되어 흩날렸다. 여지없는 함박눈이었다.

“눈이다!”

두 아이가 동시에 환호했다.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신유리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돌아갈 일도 아득한데 눈까지 내리면 어쩌란 것인지.

“참, 하늘도 가지가지 한다.”

신유리가 짜증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런데 좀 눈이 이상해.”

세별이가 손바닥으로 눈을 받으며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진짜 희한하네.”

신유리도 놀라웠다. 손에 올려놓은 눈이 녹듯이 사라지기만 할 뿐, 눈이 녹은 자리에 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드라이 아이슨가?”

신유리가 중얼거렸다.

“무슨 차갑지도 않아”

태양은 하늘에서 드라이아이스가 내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여기서 말 되는 게 뭐가 있니. 어쩜 이게 다 꿈인지도 몰라. 아 빨리 깼으면…….”

신유리도 아들 말에 맞서 반박했다.

그런데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치 그것들이 하얀 종이를 눈처럼 아주 작게 오려 만든 작은 사람들, 즉 하얀 요정들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땅이나 어떤 곳에 닿으면 사르르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위가 이제 안 흔들리네“

“소지 올린 효과가 있나보다. 그나저나 내려갈 일이 더 걱정이네.”

신유리는 가방을 치우한테 메게 하고, 새별이를 업었다.

“태양아 삼족오 다시 불러봐.”

“어디 있는지 안 보이는데.”

“그냥 불러봐”

치우는 허공을 향해 이리저리 돌며 “삼족오!”하고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기저기로 계속 불러봐”

하늘 저 멀리서 삼족오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그들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점점 커지며 거대해지더니 그들 앞에 내려앉았다.

“저산 아래로 내려줘”

새가 그들을 두고 다시 날아오를 듯이 커다랗게 날개소리를 내며 펄럭거렸다.

모두 올라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던 그때였다.

“안 돼!”

태양이가 소리쳤다. 검은 알이 그의 품속에서 빠져버린 것이다.

“아아!”

“어떡해!”

모두 비명을 질러댔다.

알을 산등성이로 떨어져 어딘가로 굴러갔다.

“우리 진짜 헛짓한 거네.”

“조심 좀 하지.”

“삼족오, 다시 내려줘. 알을 찾아야 돼”

새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산꼭대기 평지위에 휙 떨어뜨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고 내려달라 그러면 어떡하니? 이 멍청한 놈아”

신유리가 화가나 소리쳤다.

“돌 같이 생겨서 눈에 띄지도 않을 텐데 그 알을 어디서 찾겠다는 거야”

세별이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모두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막막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 서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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