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조타

槷矢扣 切矢扣 𢙺㶡𣧸 跳詑의 음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좋다~”
우리민요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 말은 강조하는 말이나 감탄사가 아니다. 예전에 우리가 사용하던 말이다
얼시구는 과녁(관혁 貫革) 槷(얼), 화살 矢(시), 두드릴 扣(구)로 화살이 관혁에 맞았을 때 상황이다. 얼시구라는 말을 듣는 순간 화살이 관혁에 맞는 상황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것은 잘 했다는 표현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절시구는 끊을 切(절), 화살 矢(시), 두드릴 扣(구)로 화살이 명중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므로 당연히 잘못했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은 국궁장에서 사용됐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잘했다 못했다’라는 말로도 사용됐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말을 칭찬과 독려의 말로 사용하기 위해 지화자라는 말을 붙였다. ‘지화자’ 외치는데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말은 그림이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앵무새 말이 된 것이다. 원인도 모르면서 사용된 것은 그 만큼 연구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지화자는 무엇을 말했을까?
지화자는 잊을 𢙺(지) 불 일어날 㶡(화) 죽었다 깨어날 𣧸(자)로 과거지사는 잊어버리고 불이 일어나듯, 죽었다 깨나듯 다시 일어서자는 말이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자는 구호로 사용되기에 적절했다. 조타는 뛸 跳(조) 자랑할 詑(타)로 뛸 듯이 자랑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래서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조타’는 기운을 돋우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조타’는 ‘槷矢扣(얼시구) 切矢扣(절시구) 지화자(𢙺㶡𣧸) 조타(跳詑)’라 할 수 있다.
‘槷矢扣 切矢扣 𢙺㶡𣧸 跳詑’의 발음이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조타’로 풀이 되면 바로 그림이 연상될 것이다. 이것은 곧 말은 그림이다. 즉 그림으로 연상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말이다. 결국 감탄사로 전락할 것이다.
과거지사는 잊어버리고 기운을 내자 그래야 좋은 시절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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