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현재 우리의 삶과 별개의 것인가?
그 질문에 석연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현재라는 나무의 열매를 성급히 따려고만 하고 한 몸인 뿌리의 존재를 잊고 있다. 열매를 맺기까지 거친 흙을 거머쥐고 영양분을 올려 주는 뿌리를 과거라고 여겨 도외시 하고 현재라는 급급한 삶에 매몰되어 살고 있다고 본다. 내가 태어나서 어떤 유기적인 과정으로 흘러왔는지 역사가 방점을 찍는 과거는 우리의 사실이 축적된 하나의 유기체로 내 삶의 교집합체다. ‘과거의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해야할지’, 혹은 ‘나를 기억해줄거지?’, 그리고 ‘미처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 달라’고 하는 것들의 총합은 기억이란 요소 즉 학문적인 요소로 말하면 역사성으로 포함된다.
‘역사를 알아서 뭣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인간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고 다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이라고 누군가는 질타했다. 배부르고 따뜻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아무도 그에게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그냥 세상의 구조에 맞춰 살고 있는 기능적인 삶이라고만 여길 뿐 더 이상의 가치를 함께 논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라면 삶의 궁극에 이룰수록 자신의 정체성 확립과 역사성에서 자부심 내지 긍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억을 전제로 한 삶의 속성에서 보면 역사라는 매개물에서 힘겨운 세상을 힘차게 살 수 있는 바탕을 주고 삶을 이끄는 동인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법이다.
신(神)에게는 역시가 없다. 다만 시간을 장악하지 못한 인간에겐 모든 삶의 모습이 역사다.
존재성에서 보면 미래는 배제돼 있지만 과거는 인간이 겪어낸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버릴 게 무엇이 있는가?
실은 우리민족이 동남아시아의 장자국이고 일만 년 이상의 역사서를 가진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이 아닌가? 파미르 혹은 수메르에서 우리민족은 분거하면서 동으로 동으로 밀려왔던, 좋은 땅을 찾아왔던 간에 한반도까지 온 황궁 씨의 직계자손으로 제사장족들이 아닌가. 천손민족으로 흘러온 세월과 민족 이동의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 수 있을까? 그걸 역사라는 강줄기 속에서 찾지 않으면 그대는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보는가? 역사를 도외시하는 인간은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질문하면 아무것도 대답할 수 있는 답을 갖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 안에서 짙은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고 원래 찬란한 빛의 모습이었던 자신의 정체성 위에서 ‘내가 누구인가?’ 깨달음 얻고 살아내야 할 것이 지구상에 온 인간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저력과 역사성은 현재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위치와 긍지를 되찾기 위해 오랜 역사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거칠고 고된 역사의 줄기에서 우리민족을 살게 했던 철학과 사유방식들을 찾아서 올바른 역사적 사실과 원형연구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밀고 나가면되는 것이다. 보태고 덜고 할 것 없이 밀고 나가면 떳떳하다. 실제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우리를 3등 국민으로 만들면서 폄하했다. 그런 왜곡된 역사를 빌미로 우리를 침범하면서 역사전쟁에 불을 붙이고 야금야금 강역이나 문화영역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현실 앞에 우리는 무엇으로 방어할 것인가?
우리 역사계는 어떤 방비책을 갖고 있는가? 그저 우리는 과거 그들의 속국이고 일천한 역사를 가진 하등국가라고 스스로 알아서 기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그동안 일본이나 중국이 조작한 역사의 틀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침략해 가장 먼저 한 일이 한국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고, 단군역사를 신화로 바꾸면서 연륜을 낮추고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왔다고 조작하여 세뇌 교육을 시켰다. 일본의 이런 주장에 적지 않은 한국의 지식인들도 동조했고, 최근 중국은 이를 기반으로 동북공정을 진행해 왔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세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의 입장에 동조했다. 현재 한국 정부에서는 우리 역사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많은 돈을 투자해 왔지만, 아직 일본이 조작한 식민사관, 그리고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 사관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 이어진다면 국제사회는 한국을 중국의 속국이나 위성국으로 인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이끌고 가는데 방향설정과 어느 항구에서 출발했는지를 모르고 대양을 떠도는 배 골이 아닌가 싶다.
식민사관에 절은 한국의 역사가들의 자세를 보면 궁색하고 치졸한 변명은 때려치우고 아직도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것 같다. 힘차게 역사에서는 그 근원을 바로 알고 인식하는 게 우리 선인들이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투사해놓은 기운을 되찾고 연결되는 법이다. 역사를 통하지 않은 삶은 파장을 갖지 못하고 왜곡되고 거짓된 역사는 힘이 없고 원형의 기운을 받지 못한다.
‘옛역사 알리고’에선 비교적 많은 연구가 된 근대적 역사보다는 우리의 시조와 시원을 바로 세우고 좌표를 잡는데 편집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오래 연구해온 학자들의 이론은 물론 삼국사 이전의 역사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주변국에서 망가뜨려놓은 상고역사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에 빌붙어 눈치나 보면서 거대한 우리의 실제 하는 역사를 제대로 밝히고 정립하기 보다는 그저 깔아뭉개는 시각, 자기 나라의 바른 역사마저 왜곡하면서 다른 나라의 예를 건드린다고 웃음거리라고 비굴함을 내 보이는 일부 식자들의 태도들에서 서글픔을 본다.
우리나라의 실제적인 역사마저 부인한 강단사학의 꼬락서니를 척결할 때가 됐다. 식민사관에 함몰된 왜곡된 역사의식을 제거하고 자한다. 이 노력은 미래 자손들에게 반듯한 초석을 만들어주기 위해 역사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과거의 것을 끌어와서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사용하듯이 훗날 우리 자손들이 그 때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의 바닥에서 찾아낸 이야기들, 그 역사성을 과거의 사건에 묻어두지 않고 현대의 삶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그래서 과거 나의 생생하던 시대로 회귀해서 건강성을 찾는다는 노력으로 역사를 뒤적여보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정체성, 과연 우리 후손이 제대로 지키고 의식하고 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역사를 쉽게 풀어가고 대중들이 즐기는 역사 대중화 차원에서 ‘옛역사 알리고’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완벽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생기게 된 최적의 상태와 프로그램을 재확인하고 비껴난 것을 수정하려는 본능 작업이다.
마고대성에서 죄를 짓고 다시 수증해시 복본하려는 것과 같은 유전적 요인이다. 처음의 모습으로 가서 다시 리셋하는 것. 그것이 수증복본이다 그것에는 처음 의도된 원형이 축적돼있고 프로그램을 획득하는 것 그래서 과거 나의 생생하던 시대로의 회귀해서 건강성을 되찾는다는 노력으로 역사를 뒤적여보는 것이다.
정우제(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