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림분지 구자국 중심으로 티벳 벨트까지 연결된 문명 ‘구다천국’의 발상지
나. 스키타이 역사의 전개와 분화
1)스키타이의 역사와 전개
스키다이의 역사라 한다면 서양에선 제2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9세기 이내로 한정하는 시대로 분류해 놓고 있다. 스키다이는 파미르에서 분기된 북방의 이민족이기에 자국의 역사가 자칫 흠이 날까 하여 외방으로 몰아붙여 만든 결과물로 고대 유럽의 역사가 스키다이에서 분기됐다는 것은 아주 자존심이 상할 만 할 결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유럽의 제 국가가 형성된 이후나 비슷한 시기에 스키다이의 역사를 잣대로 삼았을 법하고 그런 전제하에 유럽의 역사를 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스키다이는 이란계 유목민족이라고 정의하지만 실제는 북방계 유목민이며 ‘머리족’ 인 고조선의 연방국가이다. 이 이란계 유목민이란 근거는 아마도 아리아인들이 동진하는 과정에 중앙아시아에 뿌리 내린 부족들을 근거로 하였던 것이다. 스키다이의 신화를 살펴보면 그리스 신화에 스키다이는 ‘수골리족’이라했는데 ‘수골리’란 전장에서 잡은 포로의 머리의 가죽을 벗겨 손수건처럼 말아서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고 하여‘수골리(首骨離)’가 된 것이다.
실로 스키타이(사카)는 아랄계(서방)와 알타이계(동방)로 크게 구분한다. 스키타이는 카스피해등 북방에서 목축을 일삼는 유목민족이다. 기후변화 등의 이유로 기원전 24세기-20세기경 “아리안족”이라 불리는 유목민족(스키다이)이 대거 우랄산맥을 넘어 남진, 서진하게 된다. 이것이 우랄계스키다이인 것이다. 전차와 철기문화를 가졌던 이들의 일부는 인도 북부의 펀잡지방을 시작으로 북인도로 들어가서 인도의 ‘베다문화시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파키스탄 중북부지역도 점령했다.
인도경전에 나오는 ‘리그베다’는 기원전1500년경에 만든 것으로 ‘리그베다’의 내용을 통해서 가벼운 바큇살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회전하며 이동 할 수 있는 수레나 전차를 타고 전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당시 아리안민족의 우수한 유목문화를 확인했다고 한다. 일부인 아모리인들은 유프라테스강의 서쪽지방을 점유했고, 기원전 2100년경부터는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을 점유하기 시작하였던 민족으로 수메르지역의 우르제3왕조(기원전2100년-2000년)의 멸망의 원인들 중 하나였다. 기원전 14세기경 아모루왕국을 형성했으며 그 중 후르리인들은 미탄니 제국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가장 중심적인 제국은 아리안족이 세운 바빌로니아제국과 아시리아제국이었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는 같은 부족연맹체로 동맹으로서 서로 공존하며 때로는 대립하기도 하였다.
유럽으로 서진한 아리안족들은 많은 부족을 데리고 갔는데 대표적인 부족으로 ‘켈트족’(갈리아족)이다. 켈트족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알프스산맥에서 출현한 아리아족의 일파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 도나우지방에서 이동해온 켈트족이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지방에 씨족사회를 형성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 그 부족명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부족으론 하이두이족(수도이름:프랑스의 비브락데), 알로브로게스족(비앵), 암비아니족(아미앵), 아퀴타니족(보르도), 아트레바테스족(아라), 아르베르니족(게르고비아), 보이족(볼로냐), 밸로바키족(보베), 비투리게스족(보르주), 카르누데스족(샤르트르), 코리오솔리타이족코르셀), 헬베티족(라텡), 레모비케스족(리모쥐), 렉소비족(리시외), 메디오마트리키족(메츠), 메나피족(카셀), 모리니족(불롱 수메르), 남네테스족(낭트), 네르비족(바베이), 오시스미족(보로기움), 파리시족(파리), 페트로코리족(페리고), 픽토네스족(푀띠에), 라우리키족(아우구스타라우리카(스위스), 레도네스족(렌), 레미족(렝스)산토네스족(셍트)세노네스족(셍스), 세콰니족(베상콩), 수에시오네스족(수아송), 트레베리족(트리어), 방기오네스족(보름스), 벨리오카시족(루앙), 벨라비족(르퓌엥벨리에), 베네티족(반느), 보콘티족(베송라로맹) 등 36개 씨족사회 및 부족사회를 프랑스, 벨기에,스위스서부, 라인강 서쪽의 독일, 알프스이남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 이루었다. 필자는 본서 제9권의 ‘비교언어학으로 살펴 본 고조선의 달 종족’에서 그들이 고조선의 자산에서 형성된 달 종족이라고 주장했다.
다. 단군세기에서 바라 본 흉노의 역사
단군세기에 의하면 고조선 3세 단군인 ‘가륵단군’(BCE 2175년)시에 열량의 욕살이던 ‘삭정’을 약수지방(현 감숙성 장액현)지방에 유배했다가 용서하여 그 땅에 분봉한 것이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흉노는 단군 30대에서 37대까지 조공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과거의 어떤 학자가 중국의 감숙성 장액현에 ‘약수’가 있었다고 비정하였는가? 약수는 지금의 옥수스강이며 일명 ‘아무다리야강’이다. 그러므로 옥수스강 하류의 국가로 이해해야 한다.
부여와 제 부족을 고찰해 보면 부여의 종족으로 리지족(離支族), 축지족, 맥지족(貊支族)등으로 불리워졌다. 이지족은 리지족으로 소아시아인 아나톨리아의 ‘리디아족’을 말하며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축지족의 조상은 이미 인류사학계에서 입증된 미국의 인디언 일파인 나바흐 인디언과 DNA구조가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미국으로 건너 간 시기는 약 4만 년 전으로 보았다고 발표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인류종족사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은 ‘축지족’인 것으로 환인시대로부터 파미르를 통해 넘어온 것이 입증되었다. 현재 축지족은 러시아 베링해협의 자치구에서 살고 있다. 축지족은 고대에 아나톨리아의 ‘폰투스’로 존재하였다고 서양학자들은 보고 있다.
맥지족은 멕족 또는 메지족으로 성경에선 ‘메데사람들’이라 하며 오늘날 고대 소아시아 문명을 일군 ‘메디아족’으로 후에 아케메네스 제국을 열어 나간다. 리디아족, 메디아족이 소아시아의 고대문명을 열어 나가는 것이며, 학계에서 이야기하는 청동기문명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이 시기는 지중해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열어 나갔던 ‘기시제국’(고시)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나중에 이미 아나톨리아에서 문화를 만든 ‘프리지아’족은 북방인 세브비아와 보스니아, 루마니아등지로 나갔으며 켈트에 합류되어 프리슬란트 지역을 개척하고 프러시아가 되었고 인도 16국에 진출하여 ‘밧지’ 제국의 구심점이 됐다. 또한 히타이트의 멸망으로 그 터전에 아나톨리아에 여러 도시국가들이 생겨났는데 그중에 중추 역할은 프리지아의 도시국가가 됐고 기원전 638년에 멸망했다(마이다스 왕).
라. 지명과 이름 등으로 살펴보는 배달국(밝달)의 의미
(가)광명의 머리족인 박트리아
박트리아는 파미르 옆에 존재하는데 박트리아는 ‘박트라’로도 읽힌다. 박트라는 우리말의 ‘밝더라’가 되는 것이고 ‘트라(Tra)’가 달(月)이 되는 것으로 ‘밝은 달’ 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박트리아(Bactria)를 인도유럽어로 풀어보면 박은 밝다의 박이며, 박트리아를 인도유럽어로 풀러보면 박(Bac)은 ‘밝다’의 박이며, 트리아(tria)는 곧 달(月)을 말하므로 ‘밝은 달’이 박트리아이다. 이것으로 보아 초기 배달국의 영토가 파미르와 박트리아를 포함하는 것이며 인근의 ‘소그디아(Sogdia)’와 파르티아(Parthia)도 포함되며 히타이트와 그리스 북부의 보스니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지중해 문명, 수메르, 인도 문명, 북미문명까지 걸치는 거대한 영역에서 광명문화(바르)를 전파했다. 마침 이 광명사상의 전파를 입증해줄 고대의 문화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름하여 ‘빈카문화(Vinca)’이다.
빈카문화는 기원전 8,000년 전의 문화로 집계되었으며 세르비아와 루마니아, 헝가리 일부를 아우러는 광대한 지역의 문화권에서 ‘빈카문자’ 가 발굴됐고, 이어 문자의 해독 결과 곰여신이라 했다. 새머리여신과 곰 마스크 등 인형이 출토됐다. 이것은 이미 환인의 12분국 시에 파미르에서 그리스 북부로 진출한 ‘일군국’과 ‘독로국’의 문화였던 것이며 같은 시기에 ‘프리지아’도 빈카문화와 동시대인 ‘샨리우르파(우리 아버지의 산)’ 유적을 통해 아나톨리아에서 문화를 꽃피웠으며 히타이트 제국 건설의 원동력이 됐다.
필자는 광명의; 표기인 ‘바르(Bar)’가 그리스, 유럽은 물론 북아프리카, 동, 서아프리카 ,남, 중앙아프리카, 수메르 ,이집트, 중남미까지 넓게 퍼져서 문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인도유럽어로서 찾아 본 광명사상-바르는 통해서 전세계에 퍼진 바르사상(광명사상)을 낱낱이 증명했다.
(나)‘발트해’는 역시 ‘밝다‘의 바다로 밝은 바다를 의미한다. 문화어로 ’발뜨해‘로도 불린다. 우리말로’ 밝게 뜨는 바다‘이다. 북유럽의 바다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유럽, 동유럽, 중앙유럽, 그리고 덴마크의 섬들로 둘러싸인 바다이다. 인도유럽어로 풀이하면 박트리아와 그 내용은 같다.
(다)‘발칸반도’ 이 지명도 밝은 칸(한-지도자)이 주변 국가를 다스리는 지역을 말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발칸반도는 유럽의 남동부에 있는 반도로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유럽부분, 구 유고의 연방의 나라와 루마니아가 포함된다. 고대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민족, 언어, 문화, 정치적으로 복잡한 구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바르’인 광명사상과 고조선의 달 지명이 이 지역의 지명에 많이 녹아있다.
(라)발하슈호– 이 호수는 남부 카자흐스탄의 호수로 아랄해 다음으로 큰 호수이며 카스피해와 아랄해를 포함하는 분지의 일부이다. 이것 역시 ‘위대한 밝게 빛나는 호수’라고 이해를 해야 한다.
(마)발트는 라틴어로 ‘검을 차는 허리띠’를 말한다고 서양 학자들이 주장하지만 즉 발테스(BAITEUS)는 덴마크어로 ‘발테’와 관련이 있다. 하나, 라틴어 번역이 잘못 된 것으로, 밝(발-BAI)은 ’밝다‘의 원형에서 파생된 것이다. 라틴어의 트와 테는 우리말의 사람에 ’머리‘를 말한다.
이 밝달(배달)에서 나온 밝음의 지명이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 오래전에 배달국에서 파생된 종족들이 이곳으로 이동하여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보는 것은 옛날 환인시대에 12분국 중 2국인 일군국, 독로국이 그리스 반도 북부로 진출했는데 그 2국이 먼저 고대 유럽과 그리스문화를 일구었고, 또는 아리안족의 서진에 따라 재창출 됐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스의 방언 중 7가지 방언이 고대민족인 코리족이 사용했던 방언으로 그리스 문화를 일군 족속이 ‘도리아인’이며 그 도리아인은 히타이트와 북방에서 넘어온 것으로 서양학계는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면 이 유럽 전체를 뜻하는 지명을 볼 때 유럽에서 주장하는 유럽 자체적인 청동기문명의 허구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며, 고대 유럽의 정신, 사상은 고조선의 달 종족이 진출하여 만든 3수, 칠성, 광명사상이 토대를 이룬 것이다.
마. 대월지국(쿠샨제국, Kushan-차 사람들 집단)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흉노의 단편적인 것만 알고 있다. 그것도 북방에서 중국과 각축을 벌인 정도로 이해할지 모른다. 사실은 인류문명의 역사가 ‘수메르와 스키다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월지국은 서양에선 쿠샨왕조와 인도사카로 이해하고 있다.
1) 대월지국 거처는 남씨성(藍氏城)이다. 호구는 10만, 인구는 40만 명이다. 처음에 월지가 흉노에 멸망당하자 마침내 대하(大夏-박트리아)로 이주하고, 나라를 휴밀(休密), 쌍미(雙靡), 힐돈(肹頓), 도밀(都密), 귀상(貴霜)으로 나누어 모두 다섯부(5부족)의 흡후가 됐다.
그 후 100년이 지나서 귀상흡후인 구취각(丘就卻–쿠즐라 카드피세스)이 다른 4흡후를 멸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국호를 귀상이라 했다.(AD30년—한서, 후한서 서역전)
안식(安息-파르티아)을 침공하고 고부(高附-이란의 카불)의 땅을 취했다. 또한 복달과 계빈(북인도)을 멸하고 그 나라를 모두 차지했다. 구취각은 80여세에 사망했고, 그 아들 염고진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다시 천축을 멸하고 장군 1인을 두어 그곳을 감령케했다. 여러 나라들은 모두 그것을 칭하여 귀상왕이라 하지만 한나라는 그 옛날의 칭호를 써서 ‘대월지’라고 부른다.(후한서 외국전 서역편)
쿠산제국(대월지국) BC 128경~AD 450년경 중앙아시아와 북인도를 통치한 고대민족이다. BC 2세기 초의 중국 문헌에 중국 북서부 감숙성(甘肅省)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유목민으로 처음 언급되어 있다. 하나, 사실 우랄산맥을 넘어 온 서쪽 기마민족은 기원전 9세기경에 로마 등 유럽에 소개되고 있다. 단지 중국의 한서와 후한서에 대월지가 간략하게 소개될 뿐 그 오랜 역사는 이미 타림분지의 누란국(선선국)에서 발견되었던 여자 미이라로 탄소측정결과 기원전 18세기경으로 분석됐다. 이것으로 보아 약 4천 년 전에 우랄산맥을 넘어 서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당시 기원전 약20세기경 남하한 아리아인의 일부는 인도로 들어가 인도문명을 이루었고 중동과 서진한 무리들 중 한 일파가 바로 대월지국으로 보아야 한다.(5부족을 중심)
아리아인들은 인도유럽어를 사용했고 대월지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 훈족도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다. 그르므로 아리안들은 유목민족으로 정의되어 있다. 남하, 서진하면서 자연스레 목축을 일삼는 아리안 민족이 바로 유목, 기마민족인 스키다이인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스키다이의 역사는 기원전 20세기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 유목 기마민족 중 ‘후르리인’은 미탄니제국을 형성했고, ‘아모리인’들은 아모리왕조를 건설하기도 했다. 철새가 그 지방에 남아 있으면 텃새가 되듯이 국가를 형성하여 세력을 확장해 갔던 것이다. 유럽으로 서진한 켈트족(갈리아족)의 여러 부족 중 한 부족은 이배리아인들에게 동화 되어 스페인민족이 됐으며 일부는 잉글랜드에 동화되기도 했다. 또 켈트의 한 일파는 프랑크족에 동화되기도 했는데 아직도 순수 캘트족이 프랑스의 ‘브르타뉴’ 반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소아시아의 남부에 살던 리디아족은 마케도니아와 로마 등으로 예속 동화됐으며 일리리아족은 오늘날 알바니아의 조상이 되기도 했다. 또한 ‘킴메르족’은 코가서스지방의 국가 민족으로 자리 잡아갔다.
알타이계 동방흉노(匈奴)의 통치자인 라오샹(BC 174경~161경 재위)이 월지를 무찌르고 왕을 죽이자 (흡후) 중국 국경 근처에 있었던 월지부족들은 서진하기 시작했고, 남겨진 부족 들은 소월지라 부르게 되었다.(한서, 후한서 서역전) 그러나 우리의 <북부여기>에 따르면 기원전 194년에 ‘상장 탁이 월지를 세웠다’에서 월지(月支)는 아프칸의 월성이며 쿠샨제국을 말한다 할 것이다. 대월지부족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에 근원을 둔 아시족(또는 아시안족, 아사달의 후예로 본다)과 토카리아족(또는 토카라족-토하리스탄의 부족)등 5부족이 BC 194년경(북부여기 참조)에 월지는 옥수스 강(지금의 아무다리야 강 ) 북쪽에 살면서 월지의 다섯 족장은 박트리아를 점령했고, 그 가운데 쿠샨족의 족장이 새로운 왕조인 쿠샨왕조를 세웠다. 쿠산제국은 남쪽과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 북인도로 영토를 넓혔고, 북쪽의 중앙아시아로도 세력을 확장하여 소아시아인 아나톨리아의 동부와 서부를 흡수하였고 아프가니스탄,우즈백기스탄,카자흐스탄,이란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되었다.
사실 쿠산왕조의 전신인 대월지국은 그 당시 파키스탄 북부의 페샤와르에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동방흉노와의 마찰은 동진한 대월지의 한 흡후가 기원전 1세기경 실크로드인 지역을 두고 중국과의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이는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서방흉노인 대월지국의 흡후와 동방흉노의 충돌로 이어진 것으로 이해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대월지의 원거주지를 아무다리야 유역으로 보고, 그 중 일부가 B.C.4-3세기경 중국 서부로 진출해 동서교역에 종사하다가, 기원전 2세기 흉노에게 쫓겨 본거지로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초기 고조선의 강역은 진국(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우즈백, 키르키즈스탄과 카자흐스탄, 이라크, 이란, 아나톨리아(고대 터키), 캅카스지역을 아우르는 강대한 제국이었다.
월지국(쿠샨)은 고조선의 진국이며, 건국지인 아프칸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이다. 이 시기엔 고조선의 중심이 발해만이나 북만주권으로 이주한 뒤에 이란의 페르시아 왕국이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게 됐다. 고조선의 직할 종족인 아프칸 사람들이 쿠샨제국을 건국하여 무주공산 지역이 된 중앙아시아를 회복하게 된 것이며, 그 당시 아프칸 사람들은 고조선의 종족이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당연히 이슬람 세력권의 사람이기에 발상 자체가 잘못 된 주장이라고 일출하겠지만 <북부여기>에 기록된 ‘상장 탁(Tak)’은 결코 이민족이 아닌 것이다. 강단식민사학자들은 고조선 건국지를 북만주권으로 비정하다 보니 한민족을 북만주권으로 묶고, 종족도 중국식으로 잘게 쪼개어 주면 종족을 모두 이방인(아웃사이드)으로 취급하고 있다.
고조선 건국지도 엉뚱한 지역에 비정한 것도 모자라 민족학(종족학)으로 연구하여 우리의 혈통을 찾아야 할 것인데도 한반도 마한, 진한을 부르짖으니 일본의 식민사학을 그대로 옮겨 놓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강단 식민사학의 폐해에 대해 어찌 더 논하리요?
일찍이 기원전 20세기-24세기경에 중앙아시아에 아리안족으로 불리는 대집단족이 흩어져 캅카스에 토착민족으로 살아왔던 서방서키다이(우랄계)가 동방흉노에 밀려 서방으로 갔다는 중국측 사서는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중국은 장건의 서역사행으로 서쪽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고작 기원전 136년경이었기에 한서와 후한서는 그 전의 사정을 모르고 왜곡되게 집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월지국의 수도는 2곳으로 북쪽엔 파키스탄 북부의 ‘페샤와르’에 두고 남부엔 인도의 북부인 ‘마투라’에 두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기 226년 이란의 사산왕조의 번속국이 되었다가 서기400년경 프라테왕조에게 북인도를 내 주게 된다. 이 시기에 인도유럽어족인 ‘훈족’이 카프카스북부,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변 ‘아랄해’의 동부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서기 350년경 유럽에 등장해 ‘아틸라(434 –453)’의 사후까지 게르만 제부족을 복속시켰다. 또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일대를 지배하여 흑해 북안인 발칸반도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동유럽을 제패하고 아랄해의 동부지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됐다. 훈족이 유럽에서 물러 난 서기 5세기경 같은 부족연맹체인 ‘에프탈’에게 멸망당한다. 그 뒤로 훈제국은 북방에서 건너온 제부족의 연합체와 ‘아프탈’로 합병하고 만다. 아프탈의 멸망(596년)뒤엔 알타이계 스키다이인 투루크족이 중앙아시아에 등장하게 되며 아프탈의 멸망으로 흩어진 부족들 중 ‘아바르족(Abars-새로운 거룩한 광명)’이‘ 유일하게 우랄계 스키다이의 명맥을 9세기까지 이끌어가다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