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

도교에서는 서왕모 여신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민족 신앙에서는 삼신 즉 마고로 변용된다. 초기엔 마귀 할망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표범의 꼬리 호랑이 이빨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역할은 죽음과 형벌의 여신으로 좀 음산한 이미지였다. 견우 직녀의 열렬한 사랑을 깨고 은하로 갈라놓는 형벌을 관장했다.나중에는 젊고 예쁜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마 대중들의 욕구에 의한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젊고 예쁜 모습으로 갈 적에는 능력도 달라졌다. 불사약을 가진 생명의 여신이 됐다. 생명을 점지하고 탄생시키는 역할이 담당했다.
생명의 여신, 죽음과 생명이란 이 양면성을 한 여신이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건 뭘 의미할까? 신화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원초적인 어떠한 본능 여러 가지 이런 것과 상반된다.프로이트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양면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모순된 충동이 있다.사랑과 욕망을 상징하며 삶과 생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며 살고자하는 본능을 에로스적인 충동이라고 부르고 그것과 반대되는 죽으려고 하는 충동이 있다. 이거를 타나토스적인 충동이라고 한다.그래서 삶과 죽음의 두 가지 상반된 충동이 우리 몸속에 공존하고 바로 서왕모라는 이 존재는 상반된 이 충동을 잘 보여준다.곤륜산이라고 하는 산에 사는데 거기에 아름다운 궁궐이 있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호수 요지라고 하는 보석 같은 호수. 요지에서 잔치를 하면 전 세계의 신들이 다 축하하러 온다, 그러면 서왕모는 그들한테 대접하느냐? 궁궐 옆에는 서왕모가 기르는 복숭아밭이 있다, 그 복숭아 이름을 반도라고 하고 그 복숭아밭을 반도원이라고 부르는 과수원이 있다,이 복숭아는 3천 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천 년 만에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를 하나 따먹으면 1만 8천 년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있었는데 손오공이다.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이 서왕모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나서 반도원에 들어가서 복숭아를 따먹는 장면이 소설에 나온다, 이 복숭아와 관련이 있는 이가 또 있다. 고조선을 침략했던 한무제 였는데 그의 신하 중에 동방삭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이 동방삭은 서왕모의 복숭아밭에 가서 다른 사람들은 감히 꿈도 못 꾸는데 복숭아를 몇 개를 훔쳐가지고 도망갔다. 이 복숭아는 한 개만 먹어도 1만 8천 살을 사는데 엄청 오래 살겠죠.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고 오래오래 산 동방삭 때문에 오래 산 사람을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다. 이 말도 서왕모 신화에서 나온 말이다.그러나 근원되는 그 신화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가 다 잊고 살고 있다.지금 이것에 대해서 우리 민족은 한번쯤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서왕모의 초기 모습, 죽음과 형벌의 여신 모습. 이것과 관련된 것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다.서왕모가 초창기에 왜 무시무시한 일을 맡았느냐 이건 옛날 동양에서는 서쪽에 대한 관념 때문이다. 옛날에는 서쪽이 해가 지는 곳이고 이거는 죽음과 관련된 땅이다.서쪽에 대한 그런 생각이 나중에 음양오행설이라는 동양 철학으로 더욱 체계화된다.오행에서 서쪽이라는 방향은 차디찬 쇠붙이로 이것은 대개 형벌이라든가 죽음 이런 것들하고 상관이 된다. 이런 관념은 조선시대까지도 내려온다. 한양을 건설했을 적에 음양오행설 여러 가지 이런 철학적인 기반 위에서 세워진다. 그러면서 한양의 서쪽에는 어떤 기관들을 배치했느냐. 감옥 또는 처형장 이런 것들을 주로 배치를 했다.그것이 근대까지도 어느 정도 연결이 된다. 그래서 서쪽에 감옥소가 많았다. 서대문 형무소 그리고 서북쪽 골짜기가 있었는데 그 골짜기에서 주로 처형을 많이 했다.그래서 ‘골짜기로 간다’ 그 말을 줄이면 ‘골로 간다’ 이런 말이 된다.그 ‘골’이라는 게 머리 골 아니다. 이런 말들조차도 신화적 이미지 그 배경과 관련이 된다.‘예’가 ‘항아’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신화가 어떤 시대나 사상을 반영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화를 잃어버리고 있다. 곧 역사를 잃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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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여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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