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통치 방침을 알리는 황제의 칙유

칙유(勅諭)는 이러하였다.

“황제(皇帝)는 천하(天下)의 문무 관원(文武官員) 군민인(軍民人) 등에게 칙유(勅諭)한다. 짐(朕)은 생각건대, 하늘이 일대(一代)의 인군(人君)을 내면 반드시 일대(一代)의 정치(政治)를 이루나니, 예로부터 그렇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다스림[治]이 성쇠(盛衰)가 있고, 정사(政事)가 득실(得失)이 있는 것은 또한 인군이 사람을 잘 쓰고 잘 쓰지 못하는 소치로 말미암는 것이다. 또 당(唐)나라·송(宋)나라로 말하면, 당 태종(唐太宗)이 어지러운 것을 다스려서 바른 데로 돌리는 재주가 있고,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덕(德)이 있어, 능히 정관(貞觀)의 정치를 가져와서, 쌀 한 말[斗]에 3전(錢)을 하고, 바깥 문을 닫지 않았다. 사방이 조용하고 편안하며, 오랑캐가 복종하여, 근고(近古)에는 비교할 이가 없는데, 그 까닭을 찾아보면, 당 태종이 능히 천하의 어진이를 썼다. 왕규(王珪)·위징(魏徵)은 혐의와 원망에서 석방했고, 이정(李靖)·울지경덕(尉遲敬德)은 원수와 적(敵)에서 들어 썼고,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는 다른 대(代)에서 썼으며, 송 태조는 개주(介胄) 가운데에서 일어나 구오(九五)의 위(位)를 밟아 사방을 무마(撫摩)·안집(安輯)하고, 열국(列國)을 빼앗아 평정하고 세상과 더불어 휴식(休息)하여, 크게 승평(昇平)을 누리어 3백여 년의 홍기(洪基)를 열어 놓고, 성명(聲名)·문물(文物)의 풍속을 일으켰으니, 그 까닭을 찾아보면, 송 태조도 또한 능히 천하의 어진이를 쓴 것이다. 범질(范質)·왕부(王溥)는 모두 선대(先代)의 구신(舊臣)이고, 석수신(石守信)·왕심기(王審琦)는 다 전조(前朝)의 숙장(宿將) 인데, 송 태조가 들어 맡기었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당 태종·송 태조가 적심(赤心) 을 미루어 사람을 썼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다하여 섬기어, 마침내 모두 일대(一代)의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된 것이다. 믿을 만한 역사에 실려 있어 소연(昭然)하게 볼 수 있다.

짐이 고황제(高皇帝)의 적자(嫡子)로서 연국(燕國)에 번병(藩屛)이 되었는데, 고황제께서 연국의 땅이 호로(胡虜)와 접경(接境)하였다고 하여 여러 번 변방의 일을 부탁하시었다. 뒤에 의문 태자(懿文太子)가 훙서(薨逝)하매, 고황제께서 짐이 대사(大事)를 맡길 만하다 하여, 동궁(東宮)에 정위(正位)하여 기본을 튼튼히 하려고 하시었는데, 불행히 고황제께서 승하하시매, 윤문(允炆)이 유조(遺詔)를 꾸미어 위(位)를 잇고, 제왕(諸王)과 골육을 살해하여, 흔단(釁端)을 품은 뜻이 이미 심하고, 짐을 의심하는 마음이 실로 깊어서, 즉위한 지 얼마 아니되어 맨 먼저 간신(奸臣)을 보내 포위하고 핍박하기를 솥 속의 고기와 그물 속의 토끼처럼 하여 결코 살 수가 없었다. 짐이 실로 부득이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스스로 구제한 것이고, 처음에 어찌 천하에 마음이 있었겠는가? 마침내 한 지방의 무리를 가지고 천하의 군사를 대적하여, 3, 4년 동안에 큰 싸움이 수십 번이고, 작은 싸움은 수도 없으되, 승첩(勝捷)을 얻어 마침내 화란(禍亂)을 평정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랴? 천지·종사(宗社)의 신령과 부황(父皇)·모후(母后)의 도움에 힙입어, 천명이 모이고 인심이 돌아오니, 그러므로 여기에 이른 것이다. 짐이 즉위한 처음부터 감히 일호(一毫)의 사의(私意)를 쓰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천하는 부황(父皇)의 천하요, 군민(軍民) 관원(官員)은 모두 부황의 적자(赤子)이니, 부황의 성헌(成憲)을 고치고, 부황의 천하를 탁란(濁亂)시키는 간악한 자는 제거해야 된다고 여겨, 모두 이미 베어 죽이고, 그 나머지 문무 관원은 그전대로 써서 의심하지 않고, 승진시키고 상주며 내치고 벌주는 것을 한결같이 지당(至當)한 것을 따를 뿐이다. 대저 당 태종과 송 태조도 오히려 이대(異代)의 신하를 썼거든, 하물며 짐은 부황의 신하가 본래 수원(讐怨)이 있는 다른 사람의 비교가 아닌 것이겠는가? 근자에 간혹 무지한 소인이 오히려 의심을 품고, 짐이 적심(赤心)을 미루어 위임(委任)한 뜻을 생각지 않고, 한가하게 있으면 망령되게 이의(異議)를 하고, 일을 처리하면 마음껏 하려고 하지 않으니, 이들 무리는 대개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군(人君)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기 때문에 천자(天子)라 하고, 천명을 받들어 행하기 때문에 천리(天吏)라고 한다. 만일 천명이 있지 않다면, 무릇 힘이 있는 자는 모두 얻어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근대(近代)로 논(論)하면, 원(元)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매, 국가[海宇]의 넓음과 인민[生齒]의 번성함과 국용(國用)의 풍부함과 병갑(兵甲)의 성(盛)한 것을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마는, 천명(天命)이 이미 가매, 군웅(群雄)이 아울러 일어나서, 우리 태조 고황제께서 한 치의 땅[寸土]과 한 백성의 의뢰할 것도 없이 마침내 화란(禍亂)을 평정하여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이도 역시 인재를 이대(異代)에서 쓰고, 감정을 원구(怨仇)에서 푼 때문이다. 그래서 왕업을 창건하여 대통(大統)을 전하고, 예(禮)를 제정하고 악(樂)을 만들어서, 몸소 태평을 이루기를 40년을 넘겨 하였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또한 사람을 쓴 소치(所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부황께서 공(功)을 쌓고 인(仁)을 거듭하여, 성덕(盛德)이 하늘을 감동시켜, 천명(天命)의 융성한 권고(眷顧) 가 한없는 복(福)을 내리었기 때문에, 복이 짐의 몸에 이르러 대통을 이었으니, 짐이 어찌 감히 천명과 부황의 덕을 어기어 다스리겠는가? 생각하면, 짐이 지난날에 친히 봉적(鋒鏑) 을 당할 적에 사로잡은 장사(將士)를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으니, 이런 때에도 오히려 죽이지 않았거든, 하물며 지금 이미 천자(天子)가 되었으니, 사사로운 원망과 미움으로 인하여 사람에게 죄를 가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쓸 적에 피차(彼此)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일체(一體)로 보아서, 만일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자이면 비록 원수라 하여도 반드시 상을 주고, 만일 마음속으로 다른 꾀를 품는 자이면 비록 친하더라도 반드시 주살(誅殺)할 것이다. 또 천명을 받들어 정토(征討)한 장사(將士)로 논(論)한다면, 짐을 따라 치고 싸워, 몸소 시석(矢石)에 당하여 만사일생(萬死一生)으로 짐의 부황의 은혜를 갚았으나, 법(法)을 범(犯)하는 사람이 있으면, 짐이 또한 용서하지 않겠다. 왜 그런가 하면, 법도(法度)는 본래 부황(父皇)의 법도이니, 짐이 어찌 감히 사사로이 하겠는가?

지금 천하가 한집[一家]이 되고, 사해(四海)가 통일이 되어, 군민(軍民)이 서로 즐기고 함께 태평을 누리니, 감히 태조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망령되게 이의(異議)를 일으키고, 스스로 피차(彼此)를 나누어,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꺼리어서, 뜻에 부족한 것이 있어 꾸짖고 헐뜯으며, 원망하고 비방하여 제 직사(職事)를 편안히 여기지 않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천재(天災)와 인화(人禍)가 있어, 일이 발각되어 관(官)에 이르면 그 집의 삼족(三族)을 멸(滅)할 것이다. 짐이 우러러 성헌(成憲)을 준수하고, 여정(輿情)을 굽어 살피어 지공(至公)한 마음을 미루고, 인후(仁厚)한 덕화(德化)를 넓히어 해내(海內)에 혜택을 입히고 백성을 사랑하고 길러서, 전대(前代)의 규모(規模)에 비교하고 높이어 지치(至治)를 이루려고 하니, 너희들 천하의 문무 관원(文武官員)과 군민인(軍民人) 등은 짐의 가르침을 준수하여 각각 마음을 다하고, 망령되게 의심을 품어서 허물과 죄를 부르지 말면, 모두 부귀(富貴)를 무궁하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칙유(勅諭)하는 것이니 마땅히 지극한 회포를 본받아라.”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29장 B면

【국편영인본】 1책 269면

【분류】 외교-명(明

원문

○皇帝勑諭天下文武官員軍民人等: 朕惟天生一代之君, 必成一代之治, 自古以來, 莫不皆然, 而其間治有隆汚, 政有得失, 亦由人君善用人與不善用人之所致也。 且以唐、宋言之, 唐 太宗有撥亂反正之材, 抱濟世安民之德, 克致貞觀之治, 斗米三錢, 外戶不閉, 四方肅靖, 蠻夷率服, 近古鮮比。 求其故, 太宗蓋能用天下之賢, 王珪、魏徵, 釋之於嫌怨; 李靖、尉遲敬德, 擧之於仇敵; 房玄齡、杜如晦, 用之於異代。 宋 太祖起介冑之中, 踐九五之位, 撫輯四方, 削夷列國, 與世休息, 迄於丕平, 開三百餘年之洪基, 興聲名文物之風俗。 求其故, 太祖亦能用天下之賢。 范質、王溥, 皆先代之舊臣; 石守信、王審琦, 俱前朝之宿將, 太祖擧而任之。 以此觀之, 唐 太宗、宋 太祖, 推赤心以用人, 故人皆盡心以事之, 遂皆成一代之明君賢臣, 載在信史, 昭然可鑑。 朕以高皇帝嫡子, 奉藩于燕, 高皇帝以燕地與胡虜接境, 屢屬以邊事。 後懿文太子薨, 高皇帝以朕堪屬大事, 欲正位東宮, 永固基本。 不幸高皇帝賓天, 允炆矯遺詔嗣位, 戕害諸王骨肉, 懷釁之意已甚, 疑朕之心實深。 卽位未幾, 首遣奸臣圍逼, 如釜魚罝兔, 決無生理。 朕實不得已起兵自救, 初豈有心於天下哉! 竟以一隅之衆, 敵天下之兵, 三四年間, 大戰數十, 小戰無算, 制勝克捷, 卒平禍亂。 此豈人力所能爲也! 賴天地宗社之靈, 父皇母后之佑, 天命所集, 人心所歸, 是以至此。 朕自卽位之初, 不敢用一毫自私, 思天下者, 父皇之天下, 軍民官員, 皆父皇之赤子, 除更改父皇成憲, 濁亂父皇天下之奸惡, 悉已誅戮, 其餘文武官員, 仍舊用之無疑, 陞賞黜罰, 一從至當而已。 夫以唐 太宗、宋 太祖, 尙用異代之臣。 況朕, 父皇之臣, 素非讎怨, 他人之比? 近者, 間有無知小人, 尙懷疑心, 不思朕推赤心委任之意, 居閑則妄生異議, 處事則不肯盡心, 此徒蓋不達天命故也。 人君代天理物, 故曰天子; 奉行天命, 故曰天吏。 若不有天命, 凡有力者, 皆得爲之。 且以近代論之, 元有天下, 海宇之廣, 生齒之繁, 國用之富, 兵甲之盛, 孰得而勝之! 及天命已去, 群雄竝起, 我太祖高皇帝不階寸土一民, 卒平禍亂而有天下, 蓋亦用才於異代, 釋憾於怨仇, 所以創業垂統, 制禮作樂, 身致太平, 餘四十年。 由是觀之, 亦不越乎用人之所致也。 我父皇積功累仁, 聖德格天, 天命眷顧之隆, 垂裕(無彊) , 故福被朕躬, 以承大統。 朕豈敢違天命與父皇之德, 以爲治乎? 思朕往者親當鋒鏑之際, 所獲將士, 不殺一人。 於此之時, 尙不殺之, 矧今旣爲天子, 而肯私以怨惡, 加於人耶? 故用人之際, 無分彼此, 視爲一體。 若盡忠於國者, 雖讎必賞, 若心懷異謀者, 雖親必誅。 且以奉天征討將士論之, 從朕征戰, 身當矢石, 萬死一生, 以報朕父皇之恩, 其有犯法者, 朕亦不宥。 何則? 法度, 本父皇法度, 朕豈敢私! 今天下一家, 四海一統, 軍民相樂, 共享太平。 敢有不思太祖之恩, 妄興異議, 自分彼此, 心懷疑忌, 志有不足, 訕毁怨謗, 不安其職者, 必有天災人禍。 事發到官, 族滅其家。 朕仰遵成憲, 俯察輿情, 推至公之心, 廣仁厚之化, 嘉惠海內, 子育元元, 欲比隆前規, 以臻至治。 爾天下文武官員軍民人等, 遵守朕訓, 各盡乃心, 毋妄懷疑, 以速咎戾, 則可以皆保富貴於無窮矣。 故玆勑諭, 宜體至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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