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 것이 소나무에 닿았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보아에서는 83일부터 829일까지 4주간 김경인 작가(인하대 명예교수)를 초대하여 <소낭구의 얼과 힘>을 진행한다. 김경인 화백은 일본이나 강원도 정선, 청주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서울전은 1995년 조선일보미술상 수상전에 이은 2004년 학고재 갤러리 초대전 이후 18년 만의 전시이다.

‘한국성의 탐구자’ 김경인 화백은 이번 전시에서는 <소나무> 시리즈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구성했다. 이는 1991년 강원도 정선에 머무르다 눈에 띄게 된 소나무에 매료되어 줄곧 소나무 시리즈를 작업하기 시작했던 작품들이다.

작가는 한국성이 소나무에 있다는 가정 하에 소재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붓질과 얼룩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민족과 소나무는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작가는 이어 소나무는 “조형의식과 미의식의 깊은 뿌리의 한 가닥으로 청산에 살고, 독야청청하고, 낙락장송으로 일컬어지고 목재, 광솔, 송화가루, 솔피, 송진, 솔방울 할 것 없이 이만큼 이 땅의 사람들과 밀접성을 지니고 있는 나무가 또 없다”고 말한다.

그의 캔버스에 드러나는 소나무가 보여주고 있는 의미는 우리의 얼과 힘을 ‘리얼’하게 드러내는 대상이 됐다. 소나무에 대한 천착은 가시적인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한국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산천이 길러 낸 소나무도 모두 한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이었다.

현실을 비판했던 날카로운 시선은 어느새 30여 년간 상록수를 바라보면서 점점 더 순화되고 너그러워졌다. 그러면서 작품의 범위나 소나무를 표현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채롭게 변화됐다. 소나무의 배경이었던 자연에도 눈을 돌리거나,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서 바라보며 탐구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소나무가 좀 더 단순화되면서 추상적인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온갖 역경을 견디고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국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나무들은 다소 거칠게 묘사되기도 했는데, 이는 우리 문화 원형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적 미, 멋의 원천을 형상화 했다는 평과 함께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1994년 제6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사실적인 표현방법이 지배적이었으나 이후부터 지금까지 추상화된 형태 등 다양하게 변형된 소나무 연작을 그리고 있다. 또 소나무 중심에서 소나무를 둘러 싼 풍경에도 시선을 돌려 다양한 자연 탐구도 계속되고 있다.

1941년 인천에서 출생한 김경인 화백은 팔순이 넘어가고 60년 화업의 경륜에서 14회의 국내외 개인 전시회를 가졌고 150회가 넘는 크고 작은 전시를 치러내고, 그가 지닌 특유의 문기(文氣)로 많은 글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등 실제와 이론을 세우며 한국 미술사를 두루 거쳐 온 셈이다. 이제는 추상과 구상,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도 사라졌고, 그 구분조차 의미 없는 시대가 됐지만, 이러한 경계를 넘나들며 그 누구의 눈치도, 속박도 없이 홀로 자유롭게 작업을 이어가는 자유인 김경인 화백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소낭구’ 신작들은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폭넓은 시야와 실험적 표현방법을 시도했다. 숲과 주변풍경, 들풀 한 포기까지, 소낭구 자체만의 형상보다 소낭구가 서있는 주변과 역사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

소나무를 소재로 한국적인 조형의 힘을 찾아내는 김경인 작가의 역동적인 작품들을 통하여 그 인문적 의미와 짜임새 있는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중인 김경인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민중 미술가에서 소나무로 그림의 소재가 변화됐는데한국적 소재라면 소나무 말고도 한국을 대표하는 장승이나 한복 같은 민속적 소재, 산수화, , 구름 같은 자연적 소재 등도 많은데 특별히 소나무를 그림의 주제로 삼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작업의 핵심이 거기 있는데 내가 처음부터 관심 가진 것은 한국성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대를 거쳐 왔는데 6·25 이후에 외국 문물이 밀려들었지요. 대학 시절도 그렇고, 그림 공부할 때 너무나 미국이나 구라파(유럽)의 영향이 팽배했어요. 그래서 느낀 게 세계로 나갈 때 우리 것을 가지고 나가야지 아무리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 있어도 외국 거 비슷하게 흉내내서는 안 되겠다. 우리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비판 미술도 시작했고 자연이나 사회적인 대상을 그렸던 것입니다. 그때 제 나이가 한 50대쯤인데 나도 이제 자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으로 간다는 게 풍경화도 할 수 없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만난 게 소나무였지요. 딱 보니까 소나무가 정말 한국인을 닮아 있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조선시대에도 대가들은 소나무를 안 그린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그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전국으로 알려진 소나무들을 보러 다녔어요. 그 작업을 하다 보니까 역시 소나무를 하는 목적이 우리 것을 찾는 것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소나무는 한국 사람의 성향과 많이 닳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제일 흔하게 색동저고리, 버선, 한복, 기와집 이런 것들이 전부 한국성이죠.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해봤자 그것은 일종의 복사라는 그런 의미라는 생각만 들었지요. 저는 그 사회 현상을 의인화해서 그리는 것, 그러니까 나이가 50대니까 자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 중에서 찾는 게 소나무예요.

그것을 여러 번 발표도 했지요. 산림청에 가서 발표도 했습니다. 우리 문화재 등 사진을 전부 모아놓고 보니까 이상하게도 내가 소나무 자료 사진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소나무 자료들과 문화재들을 대조해 보니까 우리 한국의 성향과 너무나 많이 닳아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고려자기를 볼 때 고려자기의 그 선이 소나무하고 일체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찻상의 선, 도자기의 선들이 소나무하고 너무나 닮아 있어요. 이런 점을 밝히려고 그 자료를 가지고 산림청에서 발표를 했지요. 지금도 한국성이 소나무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돌산 앞 소낭구

서양화와 한국화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편지를 쓰든지 문서화하든지 전부 붓글씨를 썼어요. 붓글씨에 그림을 그려넣었던 것이 시대적 흐름이었지요. 벽에 그림을 걸어놓고 즐기는 관념적인 아름다움이 한국의 미적 기준이었죠, 일반인들은 ‘그림’ 하면 그냥 이쁜 그림을 벽에다 거는 것만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한국화는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르죠. 그 시대의 생활상이 녹아 한국화가 된 것이지만 서양화는 훨씬 분석적이고 과학적이었지요. 서양 문화는 오래도록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죠.

한국에 서양화가 들어 온 게 1910~20년 쯤에 처음 도입됐어요. 여러 자료나 도록를 보고 또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서양화는 메시지로써 의미가 강해요. 그런데 한국 미술사에서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제외하고는 메시지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내가 해야겠다 생각했죠. 한국 미술사에서 이런 메세지를 담은 사람은 제가 처음일 것 같아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들어진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화백님의 그림처럼 예술이 주는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실증주의(positive)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음악이 없어도, 그림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술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든지, 사회를 다시 보게 한다든지…… 각성하는 의미가 존재하죠. 그래서 예술이 세상에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예술의 내재된 힘은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술 아니면 그런 게 없겠죠. 사람은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입니다. 매일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어쩌다 베토벤의 심포니를 듣거나, 좋은 그림을 보게 되면 스트레스가 풀리거나 삶의 자극을 받게 되죠. 그렇게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풍요로워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이고,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일반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쉽게 전시회를 찾지 못하는데 쉽게 그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옛날 그림들은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장면이나 인물이 있었는데 현대미술로 와서는 추상이라든지…… ‘도대체 이게 그림이냐?’이해가 안 가잖아요.

19세기 초, 모리스 세드릭(1889~1982)는 그림을 평가할 때 “그림 안에 말이 있고, 역사가가 있고, 누드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그저 흰 캔버스에 일정한 질서로 그냥 그려진 물감의 색채에 불과하지 그것은 말도 아니고, 역사가도 아니고, 그냥 캔버스에 물감이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추상미술의 시작이에요. 미술의 역사는 항상 기존 가치를 뒤집으며 발전했습니다. 기존 가치의 그림에 대해서 이의를 신청하고, 그것을 의심하고, 변형을 하고. 그래서 새로운 미술이 탄생하거든요. 그렇게 미술사는 발전해왔습니다.

일반인들이 전시회에서 그림을 쉽게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림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 첫번째 조건은 필링(feeling)입니다. 그림은 느낌의 세계예요. 이해하려고 파고들기 전에 직관과 느낌으로 먼저 접근해야 합니다. 그림은 과학같은 합리적인 것과는 다르게 음악이나 그림 같은 예술 분야가 대게 그래요. 그림을 이해하지 못해도 돼요. 그림을 몰라도 돼요. 그냥 느낌으로 접하면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글/정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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