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제자인가, 저자인가

<물의 신학과 물의 시학>

어제 홍제천에서 만난 그림과 지난 주 소마미술관에서 만난 ‘쇠라’의 그림입니다.

‘그랑 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와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인데 제목에 지명을 넣어도 좋네요. 어제 중부지방을 강타한 비가 115년만의 폭우 신기록이라네요. 비가 많이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쓰레기와 나무등걸이 곳곳에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네요. 수마가 할퀴고 간 홍제천의 수요일 오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걷다보니 홍지문 옆 옥천암을 찾았습니다.

평소 지나치던 곳을 이제야 들리게 되었네요. 댕겅댕겅 풍경이 울고 있네요.

이영지 시인님으로부터 <물의 신학과 물의 시학>이란 두꺼운 책을 선물로 받았어요.

1154페이지의 거대한 책을 가방에 넣고 홍제천을 따라 걸으며 고가다리발에 붙어있는 명화들을 핸드폰으로 철없이 찍으면서 발걸음을 옮겼지요.

책이 무겁기도 하겠지만 엄청나네요. 천일의 양식을 선물 받은 듯하네요.

무거운 줄도 모르고, 공부도 못하면서 책만 받았습니다.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런 분량의 책을 집필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승님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몇 십 년을 걸쳐 평생 혼신을 다해 집필을 해오셨는데 이번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만들어 주었네요.

지금보다도 후대에 가치가 있음을 주변에서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운동 나온 사람들과 앞뒤를 다퉈가며 걷고 있어요.

책이 무겁다는 생각보다는 책을 받았다는 뿌듯한 마음이 붕붕 떠오릅니다.

펼쳐보는 페이지마다 만근의 금덩이보다 더 값진 구절이 펄펄 살아날 것 같습니다. 그게 나에게는 무한한 힘, 우주적인 힘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어난 천변에서 놀고 있는 오리 떼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흐르는 냇물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글 | 홍정희(시인)

Share:

Facebook
Twitter